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63장에서는 “‘아무 소용없다’는 말은 그 사업과 물건에 인연을 끊는 말이니 쓰지 말라”라고 했다.

얼마 전 인터넷 신문을 보다가 점잖은 충청도 사람이 하는 최고의 욕은 “내비두어~ 그려도 애는 착혀~”라는 글을 봤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에둘러 표현하는 충청도 사람 특유의 화법이라는 것이다. 한낱 우스갯소리처럼 생각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이 화법 속에 충청도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바탕에는 ‘원래의 착한 심성’, 곧 ‘불성’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표현으로는 그 사람의 실낱같은 희망을 열어주려는 배려가 깃들어 있는 말이지 않은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은 아주 극단적인 말이다. 물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의 상황에 따라 도구나 방법, 사람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때 소용없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일이나 물건이 있을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돌 하나 풀 한 뿌리조차도 쓸모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것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닐 수는 있어도 ‘아무 소용없는’ 물건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 어찌 ‘아무 소용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소용없다’는 말이 인연을 끊는 무서운 말이 되는 것은 그런 말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습관화되기 때문이며, 처음에는 물건이나 다른 사람을 포기하던 것이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일은 해봐야 안 돼, 소용없어’라거나 ‘저 사람과 관계는 어떻게 해도 안 돼, 소용없어’ 같은 일이 반복되다보면, ‘난 뭘 해도 안 돼, 소용없어’라거나 ‘노력할 필요 없어, 난 어차피 저 사람과는 안 돼’와 같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처럼 ‘소용없다’는 말은 어떤 일이나 물건 또는 사람에 깃든 불성과 자신의 불성의 인연을 끊는다. 자신과 만물에 깃든 불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면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끊어질 것이요, 또 물건이나 사람을 함부로 대하여 감사와 보은의 불공(佛供) 길이 끊기면 이는 자기 복덕을 쌓는 인연이 끊어지는 결과가 되고 만다. ‘소용없다’는 말은 참 두려운 말인 것이다.

그런 만큼 어떤 물건이든 어떤 사람이든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소용 있게 해 주는 부처님의 심법을 가지는 것만큼 큰 공부와 큰 복덕 쌓는 길도 없을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1년 3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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