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권장하는 조선옷(한복) 차림. 과거보다 세련되고 화사해졌다.
북한이 최근 권장하는 조선옷(한복) 차림. 과거보다 세련되고 화사해졌다.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옷차림과 머리단장, 화장 등 외모를 고상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북한이 최근 ‘사회주의 생활 기풍’ 확립을 내세우며 강조하는 내용의 일부다. 북한은 외모를 꾸미는 데서도 개인의 취향보다는 사회적 규범을 우선시하고 있고, 생활문화 전반에 원칙과 규범을 만들어놓았다. 옷차림을 비롯한 생활문화에서 내세우는 원칙은 ‘민족성’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룬 주체성(우리식)이다. 

북한은 개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생활문화를 ‘극단적 개인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사치스럽고 부화방탕한 생활문화”라고 비판하고, “개인의 성격과 취미, 미학적 견해만을 절대시하면서 몸단장을 소홀히 한다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은 물론 사회의 건전한 분위기와 생활풍조를 흐려놓게 된다”고 강조한다. 옷차림과 몸단장이 사람들의 사상·정신 상태와 문화생활 수준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경제난과 교류 증가로 해외문화 유입
분단 이후 남과 북은 체제가 달라도 1970년대까지는 생활문화적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남쪽은 세계화 바람과 함께 서구문화가 급속하게 정착됐다. 반면 북쪽은 1990년대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면서 중국에서 값싼 의류 등 생활용품들이 대거 들어왔고, ‘중국풍’ 또는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해외문화가 생활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또한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 사이에서 해외의 패션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북한은 최고지도자까지 나서 옷차림을 비롯한 ‘국적 불명의 문화’, 이혼율 증가 등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2002년 9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금 여성들은 치마저고리를 잘 입으려 하지 않으며 옷차림이 별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민족 옷을 입기 싫어하고 얼럭덜럭한 옷을 입고 다니기 좋아하는 것은 그저 스쳐지내 보낼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들 속에서 우아하고 보기 좋은 조선치마저고리를 입는 것을 적극 장려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사고위험도 높고, 미관상 좋지 않다며 금지하기까지 했다.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겉멋만을 추구하면서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경향’을 비판했지만 해외교류가 늘면서 유행에 민감하고 ‘자기만의 패션’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지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2007년 북한의 여성잡지 『조선여성』8월호에는 ‘옷차림도 우리의 것, 우리 식이 좋습니다’라며 “얼룩덜룩한 샤쯔(셔츠)에 기장이 짧고 찰싹 달라붙는 양복치마(스커트)”를 입는 딸의 옷차림새를 보고 꾸지람을 하는 가정주부의 사례까지 등장했다. 

그러자 북한은 “생활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생활문화 자체가 민족성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며 지속적으로 규제하면서도 단속이나 통제보다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보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가 교복디자인의 교체였다. 소학교(초등학교)부터 대학생까지의 교복을 좀 더 세련되고 화사한 색깔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가방, 학용품, 음료, 화장품, 주방용품 등 생활필수품들의 품질을 높여 중국산에서 국산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민족성’과 함께 ‘현대성’ 강조
북한이 전통적으로 생활문화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민족성’이다. 북한은 노래를 불러도 우리 선율과 장단에 맞춰 하고 옷차림과 머리단장을 해도 우리 식으로 하며 음식을 한 가지 만들어도 우리의 향취가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명절이나 결혼식 때 남자들도 조선옷(한복)을 입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북한의 언론들은 “오늘날에는 노인들과 여성들, 어린이들뿐 아니라 청장년들 속에서도 민족 옷차림이 장려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과거에는 남성들이 한복을 입는 경우가 드물었다. 

북한은 “독특한 형태와 무늬, 색깔을 가지고 있는 조선옷은 매우 우아하고 소박하다”며 이러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2003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전국 조선옷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민족성’만으로는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민족성과 함께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기준이 ‘현대성’이다. 민족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복고풍에 매몰돼서는 안 되고 현대적 미감과 세계적 추세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성’은 생활문화뿐만 아니라 문학예술 창작, 건축설계, 도시건설 등 전 분야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부각되고 있다. 
 

1950년대, 1960년대, 2000년대 평양 주민들의 패션 변화.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신세대의 모습이 남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50년대, 1960년대, 2000년대 평양 주민들의 패션 변화.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신세대의 모습이 남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최근 한복은 저고리 소매와 치마 하단을 두르듯이 꽃 여러 송이를 수놓거나 흰 치마에 사선으로 큼직하게 빨간색 꽃문양을 채우는 등 갈수록 화려한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현재 북한을 대표하는 여성정치인인 리설주 여사나 김여정 부부장의 옷차림에서 잘 나타난다. 과거 북한의 패션 주도층이 가수나 배우 등 예술인들이었다면, 김정은시대에는 이들이 표준화된 패션을 보여준다. 

리설주 여사는 첫 등장부터 북한이 권장하는 ‘조선옷 차림’으로 등장하지 않고, 몸매가 잘 드러나는 원피스와 하이힐 차림으로 공개 석상에 나타나고 있으며, 과거에 금기시되던 바지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가 여성들의 공식 정장패션을 선도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은 ‘일하는 여성’의 전형적인 옷차림을 보여준다. 그는 리설주 여사와 다르게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은 적이 없고, 언제나 단정한 투피스 차림이다. 김 위원장을 뒤에서 보좌하며 바삐 움직이면서도 바지를 입고 등장한 적도 없다.

젊은 세대의 변화만으로 북한 사회에 새로운 ‘패션 문화’가 일반화됐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남자의 경우 인민복과 검은색 양복, 여성들의 경우 치마저고리와 투피스 정장 차림새가 대세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패션이 다양해지고 있고, 그러한 다양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이 이를 점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신세대들의 패션과 생활문화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외형상 남과 북의 차이도 줄었다. 과거 예술인이나 일부 봉사원들이 하던 귀고리나 목걸이도 이제 젊은 층까지 일반화 되고 있다. 손을 잡고 거리를 산책하거나 박물관 등을 관람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신랑 신부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과 춘향의 옷을 입고, ‘방자’를 앞세워 길거리 웨딩촬영을 하는 신풍속도 생겼다. 

북한은 올해 1월 열린 조선노동당 8차대회에서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와 통제를 예고했다. 그러나 ‘현란하고 사치스러운 치장’이나 ‘무분별한 외래문물의 범람’을 단속하더라도 ‘현대성’을 추구하는 만큼 다양성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창현 소장
정창현 소장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3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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