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건축과 신규 건설사업이 활발한 동평양 전경. 대동교와 연결되어 있는 직선도로 끝에 올해 1만세대 규모의 송신, 송화지구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재건축과 신규 건설사업이 활발한 동평양 전경. 대동교와 연결되어 있는 직선도로 끝에 올해 1만세대 규모의 송신, 송화지구가 자리 잡고 있다.

[원불교신문=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남이나 북이나 집이 화두다. 남쪽은 집값이 너무 올라 아우성이고, 북쪽은 낙후된 살림집(주택)의 재건축과 공급량 부족 해결이 당면 과제다. 북한은 지난해 함경도와 황해도 등 수해가 난 지역에 수천 세대의 살림집을 새로 지어 주민들을 입주시켰다. 올해 1월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 평양을 비롯해 전국에 대규모의 재건축과 신규 주택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북한이 발표한 새로운 경제발전5개년계획에는 평양에 매년 1만 세대씩, 5년간 5만 호의 주택을 짓고, 함경남도 검덕지구에 매년 5천 세대씩 2만5천세대의 살림집(주택)을 새로 건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평양 외곽에 5개 신도시 건설 추진
그리고 지난 3월 23일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송화지구에서 주택 1만 세대 건설사업 착공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착공식에 참석해 올해 안에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역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대동강맥주공장이 있지만, 주변에 별다른 건물이 없다. 재건축이 아니라 1만 세대 규모의 ‘신도시’가 조성되는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평양 중심부 주변에 5년간 1만 세대 규모의 신도시가 5개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북한의 ‘건설법’은 수도를 비롯한 큰 도시 주변에 위성도시를 합리적으로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국가가 전체 경제를 계획하는 사회주의 시스템인 만큼 우리와 같은 주택난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을 비롯한 도시지역은 신규 주택 건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고, 농촌 지역은 노후화된 살림집의 재건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주택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주택 배정을 받지 못한 가구는 부모세대 또는 기존 가구에 동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은 대체로 20년을 주기로 주택현대화사업을 추진해왔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평양은 1950~60년대에 ‘계획도시’로 재건설됐고, 함흥·청진 등 대도시와 협동농장들에도 많은 주택들이 새로 들어섰다. 

1970~8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재건축사업과 함께 낙원거리, 창광거리, 광복거리, 청춘거리 등 평양의 주요거리에 대규모 고층아파트 단지를 조성했다. 평양을 상징하는 주체사상탑, 개선문과 같은 ‘대기념비’, 만수대예술극장·고려호텔·인민대학습당·5월1일경기장 등의 ‘기념비적 건축물’들도 이 시기에 건설됐다. 이때를 북한은 ‘창조와 건설의 전성기’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1990년대에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면서 북한은 신규 주택보급을 거의 하지 못했다. 주택 보급율도 70% 전후로 낮아졌다. 지방 도시나 협동농장의 주택들은 형편없이 노후화된 상태였다. 
 

2019년 황해북도 양덕군에 새로 건설된 농촌주택(위)과 ‘살림집 이용허가증’을 받은 주민들(아래)의 모습.
2019년 황해북도 양덕군에 새로 건설된 농촌주택(위)과 ‘살림집 이용허가증’을 받은 주민들(아래)의 모습.

북한은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평양현대화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후계자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된 이 사업은 만수대거리 재건축을 시작으로 2017년 여명거리 건설로 이어졌다. 그러나 평양의 신규 주택보급은 공장과 협동농장에 지어진 기숙사와 살림집 등을 포함해도 2만 세대를 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김정은체제 출범이후 평양 시내에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새로운 고층아파트 밀집거리가 조성됐지만, 새로운 주택단지 조성보다는 노후주택단지의 재건축사업에 가까웠다. 

이런 측면에서 8차당대회에서 발표된 평양 신도시 건설계획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평양현대화사업’의 2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단계가 김정은시대를 상징하는 거리 조성, 노후화된 ‘기념비적 건축물’의 리모델링에 치중했다면 2단계에서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일반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주택난 해소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00년대에 계획됐지만 추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신의주, 청진 등 주요 대도시의 현대화사업, 산간마을의 본보기로 재건설된 삼지연시를 모델로 하는 군(郡) 단위 재건설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해마다 모든 시·군들에 시멘트 1만 톤씩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산간마을 주택현대화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개발하고 있는 양강도 삼지연시 모습. 2019년 2단계 사업을 마치고 현재 3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북한이 산간마을 주택현대화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개발하고 있는 양강도 삼지연시 모습. 2019년 2단계 사업을 마치고 현재 3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공공기관 주도의 주택보급
북한의 주택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협동단체만이 소유권을 갖는다. 따라서 주택 보급도 국가의 책임(사회주의헌법 제25조, 제28조)이고, 국가의 부담으로 이뤄진다. 남한과 달리 민간분양이 없고, 행정기관과 협동농장, 기업소가 주도하는 공공임대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집단화하기 위해 주택건설 때 ‘설계의 표준화와 규격화’를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일부 단독주택을 제외하고는 공동주택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도시는 고층아파트(고층살림집), 농촌은 연립주택(2~3세대 거주) 중심으로 건설된다. 주택보급제도의 기본원칙은 1세대 1주택 배정이고, 주택배정은 직장과 직위에 따라 이뤄진다. 지방정권기관과 해당 기관은 가족수, 출퇴근 거리, 직업상 특성 등을 고려하여 살림집을 배정하고, ‘살림집 이용허가증(입사증)’을 부여한다. 입사증 없이는 살림집을 사용하지 못하며, 직장 변경, 이사, 승진 등의 사유가 발생했을 때 다른 주택을 배정받는다. 이사할 때는 살림집과 부대시설을 모두 반환해야 한다. 

평양 여명거리처럼 대대적인 재건축사업이 벌어지면 기존거주자에게 우선 배정이 이뤄지고, 나머지를 건설참여기관, 정책적 배려층 등에 공급된다. 최근에는 작은 평수 거주자가 웃돈을 주고 넓은 평수로 옮기는 ‘살림집 이용허가증’ 거래도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경제특구인 나선시에서는 2019년 말부터 합법적으로 주택의 판매와 교환을 허용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또한 부족한 건설자금 마련을 위해 기관, 기업소, 단체가 상업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건설할 수 있을 길을 열어놓았다. 아직은 제한적이지만 경제특구에서 주택 건설과 보급과 관련해 새로운 정책을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2009년 이후 10년간 이뤄진 평양의 주택건설사업이 2만-3만세대 정도에 그쳤다는 점에서 평양시에 연 1만호씩, 5만 세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자금과 자재공급 등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신의주, 청진, 함흥 등 주요 도시의 재건설사업도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특히 대북 경제재제와 코로나19사태로 주요 수입원인 지하자원 수출과 해외관광객 유치가 중단된 상황이라 목표달성 여부는 더 불투명하다. 다만 북한은 평양 신도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자체의 힘으로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들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북한은 속도전을 벌여 단기간에 완공한, 길이 3km의 여명거리를 대북 제재에 대한 승리라고 주장하고, 제재가 소용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선전했다. 

또한 현재 북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분야가 건설과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도 계획된 주택건설사업의 완수가 대단히 중요해졌다. 북한으로서는 신도시 건설을 통해 경제제재에 맞서 경제성장을 이루고, 주민들의 실질적인 주택난을 해소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여명거리 사례처럼 북한이 더 촘촘해진 대북 경제제재 속에서 자체의 힘으로, 경제발전5개년계획 기간에 평양시와 지방의 주택건설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올해 건설하기로 한 평양시 1만 세대, 검덕지구 5천 세대 건설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17년 완공된 평양시 여명거리에 북한 주민들이 입주하고 있다. 
 2017년 완공된 평양시 여명거리에 북한 주민들이 입주하고 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4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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