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완 농성교당 교무

정세완 교무
정세완 교무

인생열차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호남선 열차에서 차장이 차표를 검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차표검사를 해나갔습니다. “손님 잘못 타셨습니다. 열차를 바꿔 타세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한두 사람이 아니고 계속해서 열차를 잘 못 탔다는 것입니다. 승객들이 물었습니다. “차장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부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승객들은 전부 광주로 간다는 것입니다. 차장이 열차를 잘 못 탄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열차의 행선지는 어디일까요? 광주행 열차의 목적지는 차장이 틀렸다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 인생열차의 목적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누구도 인생열차의 종착역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종착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우리는 인생열차의 목적지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대종사님의 인생열차 
소태산 대종사의 인생열차는 어떠했을까요? 젊은 시절의 대종사님은 인생 그 자체가 벽이었습니다. 목적지도 종착역도 알 수 없어 운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깜깜했습니다. 벽으로 둘러싼 인생이었습니다. 자신을 후원해 주시는 부친마저 대종사께서 20세 되던 해에 돌아가시니 집안 살림 걱정 때문에 인생열차는 더욱더 큰 벽에 부닥쳤습니다. 

깜깜한 벽에서 문은 보이지 않고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걱정만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 걱정도 잊으시고 입정에 드셨습니다. 4월 28일 드디어 그 벽에서 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세상의 모든 벽이 문이로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십니다. 드디어 인생열차의 방향로를 찾으신 것입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두렷한 한 기틀을 지었도다.” 세상의 모든 이치와 다사다난한 인간사가 한 생각을 넘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달으십니다.
  

대각은 단절이라는 벽에서 소통의 문을 발견하는 것
벽이 단절이라면 문은 소통입니다. 벽에 문을 만들면 됩니다. 이것을 대각이라고 합니다. 해리포터 영화를 보면 마술로 벽에 문을 만듭니다. 모든 벽에 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면 전화선을 통해 문을 만듭니다. 대종사님은 대각을 통해 모든 벽에 문을 만듭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벽에서 문을 발견합니다. 대각은 무한의 높은 벽과 측정할 수 없는 두께의 벽도 통과합니다. 올해는 대종사께서 인생항로의 문은 발견하시고 우리들에게 문의 사용법을 알려주신 지 106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세상엔 아직도 많은 벽이 존재합니다. 인종의 벽, 사상의 벽, 남녀의 벽, 이 모든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비교하는 마음을 놓으면 문이 열린다
인간사의 갈등 대부분은 비교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육신의 치매는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이지만 마음의 치매는 많은 생각을 놓지 못하고 비교하고 상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생을 떠나는 영가들에게 “막착이거(莫着離去)” 착심을 놓고 청정한 마음으로 떠나라고 합니다. 비교는 하면 할수록 번뇌가 깊어집니다. 비교를 하되 계교하지 않는 마음으로 비교를 하면 번뇌는 사라집니다. 30미터의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뛰어내리지 못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내려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도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든다
조류 중에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가 삶의 벽 앞에서 문을 여는 존재입니다. 독수리의 평균 수명이 인간의 수명과 비슷한 까닭은 늙음과 죽음의 벽 앞에서 독수리가 스스로 새 삶의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30년 좀 넘게 살면 무뎌진 부리가 자라서 목을 찌르고 날개의 깃털이 무거워져 날지를 못합니다. 날카롭게 자란 발톱마저 살 속을 파고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때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을 밟아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선택하게 됩니다. 만일 새 삶을 선택하게 되면 6개월 정도 먹는 것도 포기하고 그 과정을 견뎌내야 합니다. 높은 산정에 둥지를 틀고 앉아 암벽에 수도 없이 부리를 쳐 깨트리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새부리가 나면 새부리로 발톱을 모두 뽑아내고 새 발톱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새부리로 낡은 날개의 깃털도 뽑아내고 새 깃털이 자라 날개짓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때 독수리의 몸은 피범벅이 됩니다. 그런데도 독수리는 그 고통의 벽 앞에서 자신을 전부 새롭게 갈고 새 삶의 문을 엽니다. 만일 독수리가 벽 속에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면 결코 인간의 수명과 같은 새 삶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미국의 랜드 포시 교수는 인생의 벽에 대해 말하기를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서라는 뜻으로 벽은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대산종사는 “진리가 2가지로 큰 시험을 하나니 하나는 큰 복을 주기 위해 작은 재앙을 주어보는 것이요. 둘은 큰 재앙을 주기에 앞서 작은 복을 주어보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들과 비교해서 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상대를 넘어선 절대의 은혜, 절대의 마음
공기, 물은 천지님이 공짜로 줍니다. 이것을 돈을 받는다면 가격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천지님의 은혜는 너무 크고 댓가를 바라지 않기에 우리는 그 무한한 은혜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무한한 물질의 보시도 천지의 보시와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천지는 무계교의 마음입니다. 무계교의 마음은 절대의 마음입니다. 절대의 마음이 되면 어떤 상황도 이해가 되고 수용을 할 수 있습니다. 인욕이라고 해서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의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이 인욕바라밀입니다.  다만 그 분노에 사로잡히면 절대의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의 마음은 대각입니다. 절대의 마음이 되면 모든 벽에서 문을 발견합니다. 단절에서 소통이 됩니다. 단절은 소통을 향한 하나의 또 다른 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진리로 향하는 문을 확인
우주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우주 속에 지구가 있고 지구 안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의 소도시와 그 속의 나는 정말로 미미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 아무것도 아닌 나의 존재를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인생을 살아가며, 일비일희합니다. 미미한 나의 존재를 놓을 때 진리로 향하는 문이 보입니다. 천국과 극락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마음이 작아지면 좁쌀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게 작아지지만 키우면 이 우주로 다 포용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대각과 부활을 통해 마음을 살리고 키워 인생열차의 방향로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길 심축드립니다.

[2021년 5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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