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집단적 경쟁운동의 성공을 위해 기업의 첨단 과학기술 개발과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한 평양화장품공장 모습.
북한은 집단적 경쟁운동의 성공을 위해 기업의 첨단 과학기술 개발과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한 평양화장품공장 모습.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북한은 최근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을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전형(모범)을 창조하고 일반화하는 방법과 집단적 경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새로운 대중운동”이라고 선전한다. 근로자들 사이 또는 집단들 사이에 “서로 돕고 이끌면서 진행하는 경쟁 운동”을 사회적으로 체질화, 생활화 하자는 운동이다. 


경쟁을 생활화 하자는 대중운동
이러한 경쟁운동을 북한은 “앞선 단위는 뒤떨어진 단위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며 뒤떨어진 단위는 앞선 단위를 따라잡으면서 다같이 전진해나가는 집단주의적 요구를 구현한 대중적 혁신운동”이라며 “양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경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구별한다. 사회주의에서도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개인보다 집단 경쟁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정권 수립이후 끊임없이 집단적 경쟁운동을 시행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이 새롭지 않다. 6·25전쟁이 끝난 후 경제건설을 위해 제창한 천리마운동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천리마운동은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천리마를 탄 것처럼 빠른 속도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천리마운동은 개인 간의 경쟁이 아닌 작업반·직장·공장단위의 집단적 경쟁과 혁신운동으로 전개되었고, 이후 단순한 증산운동이 아니라 집단주의적 사고와 생활방식을 정착시키는 대중운동으로 변화됐다. 
 

북한의 집단적 경쟁운동의 상징인 1950년대 천리마운동을 형상화 한 선전포스터.
북한의 집단적 경쟁운동의 상징인 1950년대 천리마운동을 형상화 한 선전포스터.

천리마운동을 통해 북한은 제1차 5개년 경제발전계획(1957~1961년)을 전 부문에 걸쳐 예정보다 빠른 2년 6개월 만에 목표 달성했다. 수치적으로만 보면 매년 두 자리 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사람에게는 ‘천리마기수’, 성과를 낸 집단이나 조직에는 ‘천리마작업반’이라는 명칭이 부여됐고,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는 영웅 칭호가 주어졌다. 한마디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는 북한에서 ‘천리마시대’였고, 이 시기는 지금까지도 북한 사람들에게 고속 경제성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대였다. 

이후 천리마운동은 1970년대에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으로 전환됐고, ‘80년대 속도’, ‘90년대 속도’ 등의 구호를 거쳐, 1999년부터는 ‘제2의 천리마대진군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사상교양과 집단적 경쟁운동만으로 노동생산성을 끊임없이 높이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우선 노력동원과 속도경쟁에 기초한 경제 건설방식은 초기에는 비약적 성장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점차 대중의 피로도를 증가시키면서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본투자와 기술혁신도 제때에 이뤄지지 못했다. 이러한 사례는 협동농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2000년대에 북한의 협동농장을 방문해 보면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분배를 받는 농장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협동농장에서 일을 하는 기본단위인 분조(15-20명)의 경우 실제 작업에 참여하는 농장원은 반도 안 되고, 잡담이나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고 똑같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집단 내에서 열심히 일한 근로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가 비슷한 평가를 받는 ‘평균주의’는 자연스럽게 근로자들의 노동의욕을 떨어뜨렸고, 이것은 전 사회적으로 노동생산성 저하로 나타났다.  
 

최근 실시되고 있는 새로운 집단적 경쟁운동의 지향을 보여주는 선전포스터들.
최근 실시되고 있는 새로운 집단적 경쟁운동의 지향을 보여주는 선전포스터들.

노동생산성 저하, 본위주의 만연 등의 부작용
또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관과 개인 ‘본위주의’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본위주의란 국가적·전사회적 이익보다 소속 기관·단체·기업소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행을 말한다. 즉, “다른 부문, 다른 단위야 어떻게 되든 저마다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협소한 이익만을 우선시하면서 울타리를 치고 경험과 성과들을 교환하지 않는 현상”이다. 이러한 본위주의는 도시와 농촌, 힘 있는 기관과 그렇지 못한 기관들 사이의 차이와 불균형, 개인주의 확산을 가져왔다. 

물론 집단을 강조하는 북한에서도 개인 간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학부모들도 자녀들을 명문유치원, 명문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을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음악, 체육, 컴퓨터 등의 조기교육을 시키는 명문유치원이나 ‘제1중학교’로 불리는 각 도, 시의 수재학교를 보내기 위해서는 입시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개인주의적 경향의 확산이 자칫 집단주의를 해치는 요소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최근 제시된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은 과거 고속 성장했던 천리마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적 변화에 맞게 집단과 개인의 조화를 꾀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천리마운동을 비롯한 집단경쟁운동은 기본적으로 대중의 열의와 높은 창의성, 그리고 헌신성에 끌어내는 측면에 치우쳤고, 물질적 보상보다는 훈장과 영웅 칭호 수여 등 노동자의 명예심과 도덕적 양심에 호소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에 적극적인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3~6일 평양에서 열린 제1차 시·군당책임비서강습회에서는 처음으로 ‘전국 시·군별 순위’가 발표됐다. 당연히 순위에 따라 해당 시·군에 대한 차별적인 지원책이 뒤따랐고, 하위권으로 호명된 시·군 당 책임비서들은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했다. 대단히 이례적일 일로 북한도 ‘평가와 경쟁의 일상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평가와 유인책은 김정은시대에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가 시행되면서 기업과 협동농장에도 적용되고 있다. 기업이나 협동농장이 수익을 낸 만큼 제한 없이 분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익을 많이 낸 만큼 개인이나 집단에게 경제적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한 셈이다. 특히 협동농장의 경우 분조 인원을 2-5명으로 축소해 사실상 ‘가족영농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고, 일정한 면적의 논밭을 책임지는 포전(圃田)담당제를 실시해 목표를 초과하는 생산량에 대해 농장이나 농민에게 자율처분권을 부여했다. 

또한 북한은 생산에 도입된 과학기술이 이윤을 내면 이익의 30%를 3년간 지적재산권자에게 주도록 했다. 과학자와 기술자의 발명, 신기술 창안, 프로그램 개발 등을 촉진하기 위한 유인책이다. 

그리고 과거부터 강조해온 ‘경험교환운동’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본위주의’ 척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북한은 “지금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을 활발히 벌리는데서 주되는 장애물은 기관 본위주의”라고 비판하고, 힘 있는 기관의 ‘단위특수화’와 기관들의 본위주의와 전쟁을 선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예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는 ‘부문·단체’의 모자를 쓰고 자행되는 더 엄중한 ‘반당적·반국가적·반인민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당권·법권·군권을 발동하여 단호히 쳐갈겨야 한다”고 거친 언사를 사용했다.

북한은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을 전 사회적으로 정착시켜 천리마 속도를 뛰어넘는 만리마시대를 열자고 촉구한다. 그러나 이 경쟁운동에는 서로 경쟁하되 경험을 공유하고, 집단적 경쟁을 하되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등 서로 모순되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모순된 측면을 어떻게 적절하게 조화시켜 나갈지 궁금하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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