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명 교무
김선명 교무

경전은 그 시대 문화의 총합이다 
당연히 경전결집이나 개정작업은 교단 내외의 최고의 전문가(교리, 제종교, 문학, 언어, 출판, 편집디자인 등)들에 의해 교조의 구세경륜을 드러내는 막중한 작업이다. 경전의 편찬과 개정은 교단의 실력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므로 당대 구성원 모두의 종교적 소양, 인문적 지식, 예술적 창의성에 기반하고, 교단 외 전문가들의 자문과 재가·출가 공론을 거쳐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 증보판 전서는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다. 경전결집의 중차대한 교단 성업을 졸속으로 무리하게 추진했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람과 공청회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결국 교단의 위신과 신뢰를 떨어뜨리고 교화 현장에 막대한 혼란을 가져온 교단 100년의 역사에 있어서는 안 될 대참사가 됐다.
 

『개정 증보판 전서』의 오류
이번 새전서(개정 증보판 전서)는 원기103년 수위단회에서 결의한 「교서 오·탈자 수정의 건」에 바탕해 교화훈련부 편수과가 실무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결과물을, 수위단회의 교서감수위원회가 수차례에 걸쳐 감수 작업을 마치고, 교서편정에 최종 책임이 있는 수위단회가 공식적으로 인준했다. 이렇게 공인된 새전서를 종법사가 원기106년 대각개교절을 맞이하여 거룩하게 법신불 일원상전에 봉정과 봉고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폐기되는 교단 초유의 참사를 빚었으니, 6월을 맞아 스승님 뵐 낯이 없고 교도들에게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먼저 이번 원기106년 『개정 증보판 전서』의 잘못된 사례를 대강 살펴보자.(표1)

우선 몇 가지 사례를 위에 적시하였으나,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는지는 수정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예전과 교사는 자문판이 진즉 나왔고, 성가도 이미 200장까지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를 절차에 따라 이번에 개정·증보해야 마땅한데 반영되지 않았다. 

교헌의 삽입은 그동안 제정된 이후 5차에 걸쳐서 대략 10여년 주기로 개정됐다. 전서에는 원기 62년 초판본(세로쓰기)에 넣었다가 변동성이 있다는 이유로 원기68년 개정판(가로쓰기)에서는 뺐다. 변동성이 있는데 굳이 이번 개정판에 삽입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

전체적으로 편집의 일관성이 없다. (예. 띄어쓰기 등)

결과적으로 이 모든 절차는 교화훈련부 편수과의 실무작업을 교서편정위원회를 거쳐 수위단회의 최종의결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차례의 다양한 의견이 수렴될 수 있도록 자문판과 공청회 등을 열어 공의를 거쳐야 마땅하다. 이런 과정이 없어서 대중은 진행되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고 오류투성이의 새전서를 받게 됐으니 그 충격이 더 컸다. 

주지하다시피 수위단회는 교단최고결의기관이다. 교서편정과 교리해석에 관한 수위단회의 권위는 교헌에 규정한 다음의 의결사항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2. 교서 편정과 교헌·교규의 제정 및 개폐에 관한 사항 4. 교리의 최종 해석에 관한 사항) 따라서 이번 새전서 폐기참사의 최종 귀책사유에서 수위단회가 자유로울 수 없다. 1차적인 실무책임이 교정원에 있음은 물론이다.
 

성인이 나시기 전에는 
도가 천지에 있고 

 

성인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인에게 있고 

 

성인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  

 

-무본편 52장-

한국 천주교회의 새 번역 성경 사례
2005년 발행한 한국 천주교회의 새 번역 성경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국 천주교회는 ‘본문’에 충실한 번역과 한국 천주교회의 공용 성서를 목적으로 우리말 완역 신구약 합본 성경을 주교회의 1988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구약성서 번역 사업을 성서위원회에 추진하도록 확정했다. 

번역과정을 보면, 번역위원은 각자 나누어 맡은 부분을 개별적으로 번역하고, 이 번역 초안은 1차로 번역 위원들의 독회를 거쳐 수정했으며, 2차로 우리말 위원들의 독회를 거쳐 수정했다. 성경의 책 하나하나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번역되는 대로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이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번역을 그때그때 선보임과 동시에 번역에 대한 비판과 비평을 수렴해 추후의 완본에 반영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신구약 성경 전체가 28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된 다음에 번역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을 전국적으로 수렴해 최종 수정과 윤문 작업에 반영했다. 그 동안 새 번역 성경 단행본은 10여 년에 걸쳐 10만 부 이상이 배포됐다. 이후에는 각 교구와 대신학교, 수도회, 성서 모임 등에 새 번역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04년 11월 23일에 새 번역 성경 공청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제시된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성서위원회는 또한 합본 위원회와 합본 실무반을 구성해, 번역 원칙과 세부 사항들을 다시 검토하고 다듬은 뒤, 이를 신구약 성경 전체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합본 작업 과정에서 또 우리말 전문가들에게 성경 전체를 통독하여 평가와 수정 의견을 제시하도록 위촉했다.

위 절차를 다시 요약해 보면 1988년에 주교회의에서 결의한 새 번역 사업이 18년만인 2005년에 최종 완정됐는데, ‘새 번역 성경은 한국 교회의 공동 작업’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에 비취보면, 이번 『개정증보판 전서』는 어디에 내놓지도 못할 졸작이다. 과거 교서편수 전문기관인 ‘정화사’급은 아니어도 경전의 권위를 생각해 교화훈련부 편수과가 실무적으로 지원업무는 할지라도 이를 책임 있게 진행할 ‘편수위원회’가 꾸려졌어야 하고, 수위단회 ‘감수위원회’에서 면밀하게 살펴봤어야 한다. 그러나 실무위원회에서 진행된 이번 작업은 단순히 오·탈자 수정만이 아니라 타이핑 작업부터 새로 한 듯 보인다. 왜냐하면 정전에서 오자가 나오고 구전서에 없던 문법적인 오류가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 아쉬운 점은 구전서와 새 전서의 수정된 내역을 비교해 정리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새전서 편정 과정은 법적 절차는 거쳤을지 모르나, 형식, 내용, 감수 그리고 폐기 결정 과정들이 전서 발간에 합당한 취사였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적어도 실무위원회에서는 『개정 증보판 전서』 작업에 있어 그 취지와 진행과정이 공개되고 개정 색인목록 공유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진행됐어야 한다. 이번 전서의 폐기 참사는 대중을 더 소외시키고 타자화시키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총부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冷笑) 그리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슬픈 넋두리가 가득하다. 
 

원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제안 
이번 일을 계기로 교단이 진실로 새로워지기를 염원하면서(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기우(杞憂)에서) 원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제안 드리고자 한다.

1. 이번 『개정증보판 전서』 폐기참사는 교단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를 제척(除斥)하거나 마녀사냥식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경계를 당하여 사체(事體)를 바루고 경위를 잘 살펴 이로부터 전화위복 하는 것이 대중이 요구하는 바이며, 그 또한 공부인의 자세이다. 

교단 4대를 앞두고 안팎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교단을 수위단회에서 한발 먼저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하면서 바루어 줘야 한다. 수위단회는 먼저 종법사를 모시고 밝은 지혜로, 부족하고 성급했던 부분을 낱 없이 고백하고 참회하며, 진정성 있는 자세로 재가·출가 대중들에게 사죄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공식 기구로 교서편정위원회를 튼실하게 꾸려 대중과 호흡하는 시스템으로 다시 시작해 교법도 교단도 살려내야 한다. 

2, 정체성을 세워가는 공동의 작업이어야 한다.
『개정 증보판 전서』의 결집작업은 기존 교전과 교서에 바탕해 치열한 교상판석의 시간이자, 해석학의 시간이어야 하고, 교단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내는 시간이어야 한다. 재가 출가 모두가 함께 공부하는 시간으로 원불교의 정체성을 세워가는 은혜로운 성업이어야 한다. 앞서 한국 천주교회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 작업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교전(정전과 대종경)을 기본으로 하고 기존 교서의 내용도, 전서의 체제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 원점에서 깊이 숙고하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3. 조불조탑(造佛造塔)은 말세현상이다. 
교학수립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교학자의 풀(pool)인 원불교사상연구원을 비롯해 교학대와 영산선학대, 대학원대, 미주선학대학원대 등에서 이번 『개정증보판 전서』 작업에 동참하지 않은 현실을 보라. 단연코  600억짜리 소태산 기념관도 중요하지만, 새전서 결집을 그와 같은 비중으로 모든 교단 내외의 인적 물적 역량을 총동원해 결복 백년대 교운을 열어가는 경전 재결집 불사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 사업은 교단 100년대 최우선 사업이었어야 했다.

전산종법사는 5월 교화단보를 통해 1대, 2대, 3대를 세분 스승님의 기운으로 간다고 하셨고, 4대는 대중 기운으로 간다고 하셨다. 대중의 집단지성으로, 교화단으로, 공화체제로 가면 된다. 지금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지경에 처한 교단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교단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빈곤하고 나른한 인식이 대중을 더욱 낙심하게 하고 있다. 교단 집행부(교정원)와 지도부(수위단회)가 비상체제임을 선포하고 대중공사(大衆公事)로 교단 모든 구성원들의 총의(總意)를 모아내고 총력체제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중의 뜻이 거기에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 

결복백년대, 결복교운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경전은 그 시대 문화의 총합이다. 정체된 교단의 현실은 심각한 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럴수록 근본이 바로서야 한다. 현상적인 조불조탑도 물론 필요하나, 근원으로 회향해 소태산 깨달음의 본지와, 교법의 정체를 바로 세우는 노력이 2세기 교단의 급선무가 돼야 한다.

/원불교시민사회네크워크교당

[2021년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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