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심 교무
이성심 교무

[원불교신문=이성심 교무] 추모의 달 6월.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성비 명’을 교도님들과 공부했다. 서문에 “옛날 영산회상(靈山會上)이 열린 후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을 지내고 계법(季法)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중략) 이것이 곧 구주이신 대종사께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고 했다.   

보통 정법 천년, 상법 천년, 계법 천년을 거쳐 말법시대가 되면 주세불이 출현해 미륵회상을 펴신다고 한다. 

법타원 김이현 선진은 대산종사의 법문을 재인용해 강조했다. 정법시대는 깨침과 수행이 있고, 가르침도 있는 때이다. 상법시대에는 깨침은 없고 수행과 가르침만 있고, 계법시대에는 가르침만 있어서 말법시대가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깨침이나 수행은 없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계법시대의 제자로 전락할 수 있다. 반드시 수행이 밑받침되어야 하고 확실히 깨친 바가 있어야 정법시대의 대종사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자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는 어느 시대의 근기로 대종사의 일원교법을 수호하는 제자인가 돌이켜 본다. 요즘 교단은 개정 증보판 새 전서 문제로 재가출가 교도들의 다양한 의견이 답지되고 있다. 그 안에는 교단 내 컸던, 작았던 과거의 문제들이 버무려졌다. 대중들이 이해할 만큼 속 시원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나왔음을 반증한다.  

또 하나 종교가이지만 이제는 권위의 시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미국 작가 윌리엄 아서 워드는 “평범한 교사는 말을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며, 우수한 교사는 시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스승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저술한 『정전』과 언행록 『대종경』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행운아이다. 

최근 대산종사 수필집에 기록된 내용을 음미하곤 한다. “대종사님은 큰 사건은 작게 만들어 처리하시고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일수록 쉽고 간단하게 처리하시되 상은 많이 주시고 벌은 쭈그려 작게 내리셨다.” 원기58년 2월에 기록된 내용이다. 

대산종사 종법사 재임 시 교단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보고를 들으시고 “법에 의하고 공의에 의하고 서서히 처리하라”고 했다. 다음날 대중이 아연실색하여 회의를 소집했다. 문제 수습에 대하여 공사함을 들으시고 “교단이 살아 있다. 대중이 잘 알고 있으니 걱정 없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매일 경계 또는 문제를 접하게 된다. 근기 따라 그 문제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대산종사는 “공의로 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공동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이번 일로 교단이 살아 있고 또 살아 있는 동지가 있음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쁜 일이다”고 대중을 다독였다. 잘하고 있는 후진은 더 잘하라고, 실수한 제자는 그런 일 없도록 정신 차리라고 다독인 것이다.

원 포털에서는 6월 말까지 원불교 전서 증보판 발행에 대한 각종 의견을 수렴 중이다. ‘어떻게 하자’가 아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한 의견들이 피력되고 있다. 대종사는 『정전』 원문에 ‘~(하)자’는 말씀을 많이 했다. ‘~하자’는 대종사께서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할 때 쓴 표현이다. 또 ‘이러하니 어떻게 하자’며 권유한 것이다. 절대 권위를 앞세우지 않았다. 개교 표어에 ‘~하자’는 표현이 가장 처음 나온다. 

정신개벽을 하지않으면 안 되는 필연조건을 먼저 밝힌 것이다. 그 권유는 상대방인 ‘너’가 아닌 ‘나’를 가리킨다. 대종사 앞에 마주한 나와 우리 모두에게 ‘~하자’고 권유하고 있다. 

공심에서 우러나오는 의견을 잘 수용하자. 교단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지혜로운 발언들을 잘 반영하여 원불교 전서 증보판 발행 불사에 임하자. 그래서 우리 모두 정법시대의 후진이 되어 보자. 

/둔산교당

[2021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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