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김일성 주석 추모일을 맞아 꽃을 들고 만수대언덕을 오르는 평양 시민들.
7월 8일 김일성 주석 추모일을 맞아 꽃을 들고 만수대언덕을 오르는 평양 시민들.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북한은 매년 1950년 6·25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까지 한 달간을 이른바 ‘반미공동투쟁월간’으로 설정하고, 대규모 반미대중집회와 함께 대미·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 행태를 보였다. 특히 6월 25일 남침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미국의 개입에 맞서 체제를 지켜냈다는 측면을 강조하며 7월 27일 휴전일을 ‘전승기념일’로 더 중요시한다. 

그러나 북한은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부터 4년째 ‘군중집회’를 열지 않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아예 신문에조차 6·25 전쟁 관련 기사를 1개만 실었다. 대신 경제난 등 민생 해결과 코로나19 ‘봉쇄 방역’을 강조했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반미 선동보다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기관이나 가족단위로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행사만 진행됐다. 

과거 ​이 기간에 각 지역별로 대규모 군중대회를 열어 ‘미제 반대투쟁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신문과 방송에서 “미제는 우리의 철천지원수”라는 내용의 반미사상교양물을 대대적으로 내보내던 것과 비교하면 형식적으로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교양내용 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전승절’을 앞두고 지역마다 전쟁 노병(6·25전쟁 참전 군인) 가정방문과 위문품전달, 노병과의 대화 등을 통해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지만 이제는 노병들조차도 ‘원수(미국)에 대한 분노’보다 ‘최고지도자와 조국에 충성심’을 강조하고 있다. 
 

2020년 6월 평양 ‘인민군열사묘’에 군인들과 청년학생 등이 꽃다발을 놓으며 참배하고 있다.
2020년 6월 평양 ‘인민군열사묘’에 군인들과 청년학생 등이 꽃다발을 놓으며 참배하고 있다.

언론매체에서도 선동적인 대미비난과 반미구호 사라져
북한 주민들은 현충일을 전후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7월 8일 김일성 주석 추모일과 7월 27일 ‘전승기념일’이 포함되어 있는 7월에 금수산기념궁전과 만수대언덕을 비롯해 국립묘지인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인민군열사묘’ 등을 참배한다. 

금수산기념궁전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집무실을 추모시설로 새로 조성한 곳으로 현재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동상이 세워져 있는 만수대언덕은 평양 시민들이 주요 명절이나 결혼식 전에 참배하는 곳이고, 평양을 찾은 외국인들의 첫 번째 방문지이기도 하다. 

혁명열사릉은 평양시 외곽 대성산 주작봉 기슭에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김일성의 부인인 김정숙을 비롯해 1930년대 만주지역에서 김일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지휘간부 160여 명만 별도로 묻혀 있다.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조성되어 있는 애국열사릉에는 해방과 사회주의 건설 등에 참여한 당, 국가, 군대 등의 유공자들과 과학·교육·보건·문화예술·출판·보도 부문 공로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안장자나 형식면에서 남쪽의 국립현충원과 유사하다. 1980년대 중반 조성 초기에는 약 250위가 있었으나, 이후 수가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1천위 안팎이 존재한다. 김규식, 조소항, 오하영, 양세봉 등 일부 민족주의 인사들의 묘도 여기에 조성되어 있다.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찾은 평양의 시민들이 묘 앞에 꽃다발을 놓고 있다.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은 찾은 평양의 시민들이 묘 앞에 꽃다발을 놓고 있다.

평양시 서성구역 연못동에 새로 조성된 ‘인민군열사묘’(공식명칭은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에는 전쟁시기에 사망한 인민군 간부 600여 명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2013년 7월에 열린 개관식 때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했고, 세계 각국의 취재기자 100여명이 초청됐다.

이밖에도 북한의 주요 도시들에는 혁명열사묘와 인민군열사묘가 별도로 조성되어 있다. 

북한 현재 국가적으로 매장보다는 화장을 장려하고 있다. 평양시의 경우 1998년 화장법(火葬法) 채택을 전후해 각 구역별로 유곡보관실(납골당)을 설치하기도 했다. 국립묘지 등 추모시설을 방문한 북한 주민들은 통상 꽃다발을 올리고 목례를 하며 절은 하지 않는다. 다만 평양시 외곽 동명왕릉 근처에 있는 ‘해외동포애국자묘’를 찾는 참배객들의 경우 남쪽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차려 놓고 술을 따른 후 절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재일총련, 재중동포, 재미동포 등 4백여 명이 안치되어 있고, 주로 추석 때 성묘를 한다. 

꽃다발을 사고 있는 평양 시민들(위)과 만수덕 언덕 동상 앞에 꽃을 넣는 시민들.
꽃다발을 사고 있는 평양 시민들(위)과 만수덕 언덕 동상 앞에 꽃을 넣는 시민들.
평양시 역포구역에 있는 ‘해외동포애국자묘’ 전경(우)과 절을 하는 가족들.
평양시 역포구역에 있는 ‘해외동포애국자묘’ 전경(우)과 절을 하는 가족들.

미국을 향해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 요구
평양에 주재했던 서방국가 외교관들은 2018년 첫 북미정상회담 이후 “최근 북한 어디를 가든지 반미구호가 사라진 변화가 뚜렷하다”며 “북한 정권 수뇌부 선에서 결정한 공식적인 정책 전환임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이 찾는 장소들에는 반미구호판이 사라지고, 평양 상점들에서 팔리던 반미포스터도 자취를 감췄다. 최근에는 초·중·고 학생 교재들과 문학·예술분야에서도 반미교양과 선전선동 내용들이 대폭 줄거나 제외되고 있다.

북한이  ‘반미공동투쟁월간’에 4년째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지 않고 미국을 자극하는 대미선전을 자제하는 데는 최근의 대미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도 없이 결렬됐지만 2차례 북미정상회담과 2019년 6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만남에 대해  “지구를 뒤흔든 세기적 만남”이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전체회의)에서도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향해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 있다”며 미국이 먼저 대북적대시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이나 종전선언과 같은 실리(實利)가 보장되어야 대화와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언급한 북한이 언제까지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자제하며 현재 국면을 유지할 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과거와 같이 격렬한 반미구호와 집회가 넘쳐나던  ‘반미공동투쟁월간’의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고 안보교양과 추모행사가 정착되는 것이 장기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7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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