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허 교무
문향허 교무

[원불교신문=문향허 교무] 새 전서 폐기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종법사의 사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미래포럼 교무들의 사퇴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긴장 국면으로 전환됐다. 위기의식을 느낀다.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교단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위험과 기회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이 길은 걸어보지 않은 길이라 두렵고 두렵다. 행여 교화에 지장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우려한다. 당장은 두렵고 우려스럽지만 우리의 자정능력을 믿는다. 비록 겉으로는 갈등이 있고 진통이 있지만, 그것마저 품을 수 있는 우리의 저력을 굳게 믿고 있다. 우리에게는 지난 106년 동안 이 법으로 공부해온 눈 밝은 공부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원불교는 종법사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줬다. 재가교도들의 신심과 정성, 교무들의 희생과 헌신을 두 축으로 꾸준히 발전해왔다. 하지만 21세기 정보화시대를 맞아 과거와 같이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명분 아래 책임질 일을 쉬 덮어주는 그런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잘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넘어가려는 지도부에 일대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번에도 또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이렇게 표출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으려고 하는 이런 모습에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사퇴를 선언한 교무들 가운데는 입학 동지도 있고 출가동기도 있다. 철모르던 20대에 법연으로 만나 함께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수십년 간 고락을 함께 하며 창자를 이어온 동지들이다. 

출가 후 각자의 일터에서 다르게 살아도 대종사의 전법사도라는 자부심과 입학동지와 출가동지 라는 유대감은 우리를 하나로 묶기에 충분했다.

무엇이 우리의 서원을 하루아침에 던지게 하였는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교무’라는 가치는 어떠한 역경도, 수모도 기꺼이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런 가치를 내던지는 그들을 말리지도 못하는 우리의 심정이 헤아려지는가? 그 속에 담긴 교단사랑과 고뇌와 깊은 뜻을 알기에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 그저 가슴만 미워질 뿐이다.

우리는 혈연보다 소중한 법연들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 비록 몸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뜻이 이루어져 창자를 이어 온 우리의 서원이 다시 별처럼 빛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우리에게는 이 사태를 ‘교단을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 하라’는 대종사님의 간곡한 당부로 받아들여 교단이 새롭게 거듭나는 전기를 만들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제 우리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정신개벽의 기치를 다시 내걸고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열린 조직, 수평적 조직으로 탈바꿈하자. 리모델링 수준에서 벗어나 새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합심합력하자. 책임질 일이 있으면 과감히 책임지자. ‘교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는 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사퇴를 표명한 동지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고, 함께 세웠던 우리의 서원이 다시 빛날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공동으로 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가 꿈꾸었던 서원은 하나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부터, 우리부터 각자의 맡은 바 직장에서 대 참회 기도를 올리자. 대종사의 근본정신으로, 일원상 서원으로 나를 새롭게 하고, 교단을 새롭게 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자.

교단 지도부 역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참회기도를 올리고 응답하자. 그 방향을 원점에서 찾아보고 초심으로 시작하자. 그럴 때 우리는 일원상 서원에서 한 길을 가는 도반으로 만날 수 있다.

/일산교당

[2021년 8월 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