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엽 교무
유정엽 교무

[원불교신문=유정엽 교무] 이번 전서폐기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공간은 교역자광장이다. 처음 문제의 제기에서부터 의견의 결집과 청원 그리고 다양한 토론까지 교역자 광장의 자유게시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출가교화단을 이용해 오타와 오기를 찾자는 주장과 대중의 의견을 결집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 미래를 위한 최고의 소통조직은 교화단이라 해왔지만 정작 가장 소통이 필요한 시점에서 무력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교화단’의 원형은 비밀결사로 소통을 어렵게 만들어 조직을 보호하는 형태이다. 상의하달은 가능해도 하의상달은 본질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으며 수평적인 연락도 상부를 통해서만 가능한 조직이다. 그동안 교단에서 보았던 것처럼 한 개인이나 소수의 의견이 의제화되는 것이 교화단과 같은 조직에서는 전적으로 최상부의 의중에 달려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번 사건이 정리된 이후 교단 시스템 혁신의 과정에서 통치조직으로 ‘교화단’을 중심에 놓으려 하는 시도들이다. 이전에 중단된 교헌개정안에서도 직선제로 선출되는 교정원장에게 인사와 재정의 권한을 몰아주면서도 교정원 중심이 아닌 ‘이단치교’를 강화하는 어색한 동거를 볼 수 있었다. 

교단이 미래를 위해 교화단에 의한 통치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교화단과 같은 조직은 소통에 장애가 많으며 출가교화단 아래 재가교화단을 구성하는 방식은 교화단의 근본정신에도 크게 어긋난 것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통치조직이 아닌 교화정책과 수행론적 측면에서 교화단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16차 원불교 정책연구소 세미나에 의하면 원기 94에서 103년까지 10년간 약 3000명 정도 평균 출석교도가 줄었으며, 교화단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에 참여한 교당은 연평균 0.38명이 참여하지 않은 교당보다 교화성장률이 높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교화단이 거의 유일한 교화정책이었으나 우리 교단의 급속한 출석률 저하를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교실에서 분단을 나누고 분단장을 뽑는 것으로 저절로 수업이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 교화단의 활성화만으로는 교당이 성장하고 교도들이 인격이 성숙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에 더욱 어려워지는 교화환경을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이 주장하고 있는 ‘설교중심의 정통적 법회에서 교화단을 중심으로 문답감정 하는 법회로 전환’이라는 대안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자신의 교화법에 대해 구전심수(口傳心授)라 했고 제자들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구전심수의 교화법이 반드시 교화단을 통한 문답감정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분명 원불교 수행론의 본질은 삼학병진 무시선이며 교화단과 훈련법은 그것들을 배우고 실현하는 수단이다. 교화단을 통해 상단원 그러니까 스승에게 감정받아야만 공부가 되는 이라면, 원불교의 마음공부는 ‘한마음(自性)’에 근원하지 않는 외도(外道)의 선(禪)일 것이다. 

급격히 교단의 교리와 문화가 ‘교화단과 훈련법’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말씀처럼 시대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교법이 확장되고 변해야 하지만 더욱 깊이 있는 철학과 효율적인 실천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소태산 대종사께서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근본교리 이외의 세목과 제도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도록 열어주신 뜻일 것이다.

[2021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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