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원불교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교당에 천도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한 마음에 교당에 갔다. 교무님의 천도법문이 시작됐다. ‘OOO 영가시여, 정신을 차려 부처님의 법문을 잘 들으소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가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며 부처님의 법문을 설하는 천도법문은 마치 내 이름을 부르며 정신을 차려 법문을 잘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열반 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은 그 제목에도 ‘전후’라고 나와 있듯이 영가와 그 법설이 설해지는 자리에 있는 아직 열반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법설이다. 영가에게도 살아있는 이에게도 함께 들려주는 대종사의 법설에는 육신의 생사라는 것이 변화라는 것과 더불어 성품에 대한 자상한 설명이 나와있다.

대종사는 성품을 허공의 달과 그 그림자 달이 일천강에 비치는 것에 비유했다. 허공의 진짜 달 그리고 일천강에 비치는 그 달 그림자. 여기에서 우리는 허공의 달만 진짜 달이라고, 그래서 허공의 진짜 달이 성품이고 의미가 있지, 일천강에 비치는 달은 진짜가 아닌 것,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대종사가 그런 의도였다면, 일천강에 달이 비추었으나 진짜 달은 저 허공의 달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대종사가 성품을 설명할 때 허공의 달과 일천강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함께 한 이유는, 이것이 일원상의 불생불멸한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를 비유함이기 때문이다.

불생불멸한 일원상은 우주와 만물의 근본인 본래 청정한 성품자리로 저 허공의 참 달과 같이 없고 없고, 아니고 아니다. 법문에서는 ‘한 이름도 없고 한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도 없고, 허무와 적멸도 없고,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 것’이라고 나온다.

인과보응되는 이치인 일원상은 그 없는 중에 있는 것이 무위이화로 자동적으로 생겨나 성주괴공, 생로병사, 육도와 사생, 주야변화, 생사 등으로 변화한다. 불생불멸 가운데 무위이화로 생겨났기에 그 인과가 소소영령하게 호리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형상과 성품의 체가 완연히 눈 앞에 있어서 눈을 궁글리지 아니하고도 능히 보며 입만 열면 바로 말할 수 있어야 가히 밝게 불성을 본 사람’이라 ‘성리품 6장’의 법문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강물을 통해 참 달이 수면 위에 비치듯, 내 눈을 통해 마음에 비치는 것이 다 성품이니, 지금 내 눈에 비치는 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성품이라는 말이다. 

마음의 형상과 성품의 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눈에 비치는 그대로가 마음의 형상과 성품의 체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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