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정전』과 『대종경』을 보면 대종사가 보통급부터 여래위까지 다양한 수준을 가진 대중 모두를 위해 『정전』을 쓰고 법을 설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은을 설명할 때는 일원상을 모르는 누구라도 쉽게 생각해 알 수 있도록 먼저 우리가 사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을 들어 설명해,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삼학에 대해서도 대종사는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이해를 도왔는데, 교의품 22장에는 삼학을 지남침(나침반)에 비유한 내용이 나온다.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의 천만 경계에 항상 삼학의 대중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니, 삼학을 비유하여 말하자면 배를 운전하는데 지남침 같고 기관수 같은지라, 지남침과 기관수가 없으면 그 배가 능히 바다를 건너지 못할 것이요, 삼학의 대중이 없으면 사람이 능히 세상을 잘 살아 나가기가 어렵나니라.” 

인간이 태어나 겪는 천만 경계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과보응의 이치를 따르는 물질 경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물질 아닌 것이 없다. 우선 가까이 내 몸부터가 생노병사를 겪는 물질이다. 육근을 통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 내가 배우는 모든 것들, 세상의 물질문명과 나를 둘러싼 인연관계, 그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모두 인과보응의 이치를 따라 생했다가 멸하는 물질 경계들이다. 이 세계는 생한 것은 반드시 멸하고, 멸한 것은 반드시 생하는 것으로 영원하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둘은 불생불멸의 경계이다. 인과보응을 있게 하는 바탕이다. 허공이 텅 비어있음으로 만물을 드러내듯, 불생불멸의 경계는 두렷하고 고요하여 인과보응의 이치를 환하게 드러낸다.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기에 인과는 호리도 틀리지 않는다. 크고 작음이 없고, 오고 감이 없고, 선악업보의 차별이 없고, 언어명상이 끊어진 이 세계는 비어있음으로 영원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종사는 공부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삼학의 대중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삼학의 대중이란 무엇일까? 삼학의 대중은 일원상이다. 두렷하고 고요해 불생불멸한 가운데 소소영령한 인과보응을 여의지 않고, 인과보응을 드러내는 가운데 그 인과보응을 드러내는 불생불멸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지남침은 늘 남쪽을 가리킨다. 어느 곳에 두어도 한 방향을 가리키는 그 성질이 사용법을 아는 이로 하여금 망망대해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한 쪽에 집착해 안정하지 못하고 마음의 자유를 잃은 것이 파란고해다. 공부인의 지남침, 삼학이 가리키는 일원상으로 인과보응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불생불멸의 세계에도 빠지지 않고 중도 일심으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로 함께 가자.

[2021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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