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오 교무
강신오 교무

[원불교신문=강신오 교무] 대종사는 몸을 두고 만사만리의 근본이라 했고, 이 몸을 낳아주신 은혜를 부모피은의 조목의 첫째 조목으로 밝혔다.

왜 그랬을까? 몸이 있어야 대소유무의 이치로 건설된 세상과 인간의 시비이해 속에서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고, 사은에 보은하며 삼대력을 닦아 혜복을 길러 부처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종사는 몸을 낳아준 것으로 부모은의 강령을 마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나타내게 한 것은 ‘자연의 공도’요 ‘천지의 조화’라고 했다. 식물도 때가 되면 꽃을 피워 수정을 하고 씨앗을 맺어 유전자를 이어나가고, 동물도 때가 되면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유전자를 이어나간다. 

인간들은 동물들과는 달리 정해진 때가 없이 원하는 때에 짝짓기를 하지만 역시 자식을 낳아 유전자를 이어나간다. 이것은 생명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자연의 공도이며 천지의 조화라고 한 것이다.

대종사가 부모은에서 몸을 낳아주신 것에 이어 큰 은혜라고 밝힌 것이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무자력 할 때에 생육(生育)하여 주신 대은’이다. 많은 동물들이 어미 뱃속에서 나와 바로 걷거나, 어미의 보호가 필요해도 1년을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다르다. 아기들은 두 발로 서는 데만 약 1년 정도가 걸린다. 자력을 얻을 때까지는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수십 년을 부모에게 의지해 살기도 한다. 내가 지금 혼자 걸을 수 있고, 혼자 먹을 수 있다면, 혹은 그도 저도 아니지만 지금 살아있다면, 무자력 한때에 나를 보살피고 양육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친부모이건, 아니건 간에, 내가 무자력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누워서 우는 것밖에는 할 수 없던 절체절명의 시기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도록 돌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도의 대의를 가르쳐 주심’이다.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줌을 말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계 속에서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관계로 이뤄진 인간사회 속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쉽지 않다. 이것은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대종사는 부모의 개념을 낳아주신 부모에서 무자력할 때에 생육해준 은혜와 인간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준 은혜로 확장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무자력한 순간들에 도와주는 모든 이들이 부모은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그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주는 모든 이들이 부모은이다. 그래서 부모보은의 강령은 내가 무자력할 때에 은혜입은 것을 비추어 내가 자력을 잃지 않는 한도에서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주는 것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1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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