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권도편 20장에서는 “불보살들은 전심(前心)과 후심(後心)이 한결 같아서 불보살이 되었으나, 범부들은 처음 발심과는 달리 경계를 따라 그 마음이 흔들려 퇴보하므로 성공을 보지 못하나니, 그대들은 언제나 도(道) 즐기는 마음과 공(公) 위하는 마음으로 전심과 후심이 한결같게 하라”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원불교에서 하는 신앙과 수행을 중생이 부처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생각을 버리는 것이 원불교에서 신앙과 수행을 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일 지금의 자신을 중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부처와 중생을 둘로 나누는 분별심에 떨어져 오히려 평생 중생상만 키워 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 예비교무들을 가르치다보면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매우 가혹하게 대하는 학생을 보곤 한다. 문제는 처음에는 태산도 뚫을 기세로 열심히 하다가도 뒤로 갈수록 자신이 왜 그렇게 가혹한 수행을 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망각한 채 습관적으로 행위만 반복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학생의 대부분은 시간이 갈수록 공부에 진척이 없어 조급증이 생기거나 몸과 마음이 힘들어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 심신간 건강을 상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자는 평소 서둘러 결과를 보려는 마음인 욕속심을 내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 왔는데, 어떤 학생은 ‘교무님 욕속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안 하던 공부를 배우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빨리 성불하고 싶다는 욕속심이 되었든,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되었든, 그 근본에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상대심(相對心)이 작용하는 것이고, 상대심으로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부처가 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잘 알기에 언제나 스스로를 부처로 섬기면서 일상의 삶에서 중생을 구제하고 은혜를 실천하는 것을 즐긴다. 잠깐의 짧은 시간을 통해 용맹정진하는 것으로는 절대 부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불보살이 된다는 것은 일상을 통해서 신앙과 수행을 즐기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통해 여유 있고 한가롭게 실천해 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마음과 뒤에 이어지는 마음, 그리고 맺는 마음이 은혜를 실천하는 공부로 한결같이 지속해 갈 수 있는 사람, 곧 평상심으로 일관할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알뜰하면서도 실속 있는 정법회상의 공부인일 것이다.

[2021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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