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아파트와 협동농장, 지방 농촌마을의 김장하는 모습들.
평양의 아파트와 협동농장, 지방 농촌마을의 김장하는 모습들.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김장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 선조들이 야채를 재배하고 김치를 절여 먹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이전시기라고 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배추나 고추를 재배하지 않고 무나 부루(상추)를 기본 야채작물로 했으므로 이 시기의 김치는 무와 여러 가지 산나물을 주재료로 해 소금에 절인 것이었다. 김치 만드는 방법이 발전하고 다양해진 것은 배추와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17세기 중엽부터였다. 17세기 자료에는 34종의 김치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고, 18세기에는 김치종류가 60여 가지로 늘어났다고 한다. 

겨울이 길고 식료품이 부족한 북한에서 김치는 ‘반년 양식’이라고 불린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북녘은 남쪽보다 일찍 김장 준비로 바빠진다. 10월 말 11월 초 각 가정에서는 수백 포기씩 김치를 담는 ‘김장 전투’에 돌입한다. 
 

북녘 김치의 특색은 ‘쩡한 맛’ 
남쪽에서는 각 가정마다 개별적으로 배추, 무 등 김치 재료를 마련해서 김장 준비를 하지만 북녘에서는 직장 단위로 배추 등이 공급된다. 각 도, 시의 인민위원회(행정기구)가 식구 수에 맞게 제정한 채소공급기준에 따라 각 공장, 기업소, 기관들에서는 배정된 협동농장들에서 야채를 가져와 각 가정에 공급한다. 

자체로 운영하는 부업지(기관들이 국가에서 허가를 받아 자체로 운영하는 농지)에서 김장용 배추, 무를 재배하여 노동자들에게 공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김장철이 되면 평양을 비롯한 도시의 거리들에서는 배추를 가득 실은 김장용채소 수송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기관, 공장, 농장별로 밭에서 배추와 무를 캐는 ‘배추 전투’와 각 가정집까지 운반하는 ‘수송 작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 ‘김장 전투’에 들어간다.

직장여성은 연말휴가를 앞당겨 받아 김장 준비를 한다. 요즘에는 세대주(남편)들도 김장 담구는 일을 도와준다. “남자들은 김치를 안 먹는답디까? 응당 도와주어야지요”라는 아내들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면서 배추를 나르고, 김장독을 닦고 직접 배추를 버무리는 세대주들이 늘었다. 평양의 아파트들에서는 플라스틱 김치독을 주로 베란다들에 보관한다.  

김장철이 되면 TV에서도 김치 담그는 법을 방송하고, 주요 도시에서는 봉사기관들과 가정주부들이 참여하는 ‘김치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김장철에 소개되는 북녘 김치의 종류는 지방별로 특색이 있긴 하지만 남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도 통배추 김치·깍두기·동치미, 백김치 등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담근다. 

김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양념이다. 남쪽과 마찬가지로 북녘에서도 고춧가루를 더운 물에 개어놓고 거기에 마늘, 파, 젓갈, 생강, 찹쌀가루를 비롯한 각종 양념감들을 넣어 준비해 놓았다가 미리 절여놓은 배추에 넣어 버무린다. 김장 양념에서 중요한 고추의 색을 살리기 위해 40∼50℃인 연한 소금물에 고춧가루를 일정한 시간 놓아두었다가 갈아 쓴다. 다만 북녘의 가정들에서 담그는 김치는 젓갈을 적게 넣고, 쩡하며 감칠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북녘에서는 김치 맛을 표현할 때 “쩡하다”란 말을 쓴다. 실제로 평양의 식당에서 직접 담가 내놓는 통배추나 깍두기를 먹어보면 “쩡하다”란 표현이 절로 나온다. “쩡하다”란 말은 원래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자극이 심하다”란 뜻인데, 북녘 사람들은 자극적으로 맵다는 의미보다는 ‘톡 쏘는 시원한 맛’이란 의미로 “쩡하다”라고 하는 것 같다. 
온 가족이 모여 ‘김장전투’를 끝내면 그날 담근 ‘써레기김치’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한다. 독에 넣은 통배추김치는 통상 다음 해 설날에 첫 개봉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고 한다. 
겨울에 김치는 김치지지개(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 김치만두 등 다양한 김치요리로 밥상에 오른다. 
 

평양시 김치경연대회에 출품된 송이버섯김치, 갓김치, 유채김치, 깍두기, 달래김치, 동치미.
평양시 김치경연대회에 출품된 송이버섯김치, 갓김치, 유채김치, 깍두기, 달래김치, 동치미.

대량생산과 맛 보장으로 ‘포장김치’ 인기
북한에서도 세대교체가 되고, 도시 인구가 많아지면서 ‘공장김치’를 사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도시의 각 구역(구)에는 여성들의 편의를 위해 김치공장들이 운영되어 왔지만 맛이 좀 떨어졌다. 그래서 북녘 사람들에게 ‘공장김치’에 대해 물으면 “공장김치의 맛도 좋지만 아무렴 제 손으로 담근 김치만 하겠나요? 김치를 아무 때 건 먹고 싶을 때 제 집 독에서 인차 꺼내먹어야 쩡하고 맛도 더 있는 거지요”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평양, 함흥 등 주요 도시에 현대화된 김치공장이 새로 문을 열고, 통배추김치와 깍두기, 백김치, 섞박김치(섞박지), 보쌈김치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맞벌이부부와 젊은 층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2019년 한 해에만 일곱 개의 김치공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김장 김치와 비교해도 맛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북한 언론매체에 나온 김치공장 지배인은 “흔히 김치 맛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시원하고 쩡한 맛을 제일 먼저 두는데, 겨울날의 그 시원하고 쩡한 맛을 그대로 살려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사업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기능성 젖산균들을 자체로 배양해서 김치 양념에 넣어주는데 겨울 김치 맛을 그대로 내고 있습니다”라며 공장 생산 김치의 맛을 선전한다. 평양의 류경김치공장의 경우 연간 4,200톤의 김치를 생산할 수 있고, 시내 곳곳에 ‘봉사매대(판매점)’를 설치해 놓았다. 

또한 이제는 ‘반년 양식’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김장을 적게 담그는 도시 가정이 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최근 평양을 비롯한 전역에 대규모 남새(채소)온실이 조성됐고, 온실재배가 늘면서 과거와 달리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채소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배추와 무를 대량으로 공급받아 가정별로 나누다보면 품질이 좋은 않은 것들도 있게 마련인데 이런 우려도 하지 않고, 김장 이후 발생한 쓰레기 걱정도 하지 않아 질 좋고 깨끗이 다듬어 파는 채소를 시장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북한에서도 포장김치의 대중화가 진행되고, 수시로 김치를 담가 먹는 생활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셈이다.
 

평양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정에서 인근에 사는 동생부부와 함께 김치를 담그고 있다.
평양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정에서 인근에 사는 동생부부와 함께 김치를 담그고 있다.
평양을 대표하는 류경김치공장의 내부와 생산된 다양한 김치 제품들. 류경김치공장은 평양의 구역별로 제품판매대를 마련해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평양을 대표하는 류경김치공장의 내부와 생산된 다양한 김치 제품들. 류경김치공장은 평양의 구역별로 제품판매대를 마련해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2019년 함경북도 경성군에 새로 건설한 대규모 남새(채소)온실농장 전경. 북한은 사시사철 주민들의 야채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온실농장을 확대하고 있다.
2019년 함경북도 경성군에 새로 건설한 대규모 남새(채소)온실농장 전경. 북한은 사시사철 주민들의 야채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온실농장을 확대하고 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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