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을 맞아 평양의 청년들이 어머님께 드릴 꽃을 사고 있다.
어머니날을 맞아 평양의 청년들이 어머님께 드릴 꽃을 사고 있다.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남쪽에서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에서는 1961년 11월 16일 제1차 전국어머니대회를 개최하고, “어린이의 첫째가는 교양자는 어머니이며 아들딸들에 대한 교양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자신이 훌륭한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별도로 어머니날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 출범 첫 해인 2012년 북한은 첫 전국어머니대회가 열렸던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새로 지정하고, 기념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북한은 평양산원(산부인과종합병원) 내에 여성들의 유방암을 연구하고 치료하기 위한 유선종양연구소를 새로 건설했다. 어머니날 지정과 유선종양연구소 설립에는 1차적으로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유선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머니날 제정을 단순히 최고지도자의 관심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고, 시대적 변화를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교육의 첫 출발인 가정과 어머니의 역할에 주목
과거 1950~1980년대 북한은 어머니인 중년여성을 사회주의 건설에 헌신하는 ‘천리마의 기수’로서 ‘사회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나라의 꽃’으로 표현했다. 가사와 육아는 기본이고, 사회적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1년에 발표된 노래 ‘여성은 꽃이라네’는 북한이 요구하는 여성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도 북한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다. 2000년대 초반 평양에서 만난 대다수 여성들은 “집안일은 당연히 여성으로서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이 무렵에 발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준마처녀’란 노래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 공장 동무들 웃으며 말을 해요/ 아니 글쎄 날보고 준마 탄 처녀래요/ 하루 일 넘쳐해도 성차 안하는 내 일 솜씨 참말로 번개 같다나(1절)”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현재도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일하는 리광숙이 20년 전 처녀시절에 작사한 것으로, 2000년대 중반 보천보전자악단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현송월이 불러 큰 인기를 누렸다. 현송월은 2018년 평창올림픽 때 북의 삼지연관현악단을 이끌고 남쪽에 온 바 있고, 현재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1월 16일 어머니날을 맞아 꽃을 사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어머니의 묘에 참배하는 모습. 
11월 16일 어머니날을 맞아 꽃을 사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어머니의 묘에 참배하는 모습. 

준마처녀는 준마를 탄 씩씩한 모습에 빗대 노동현장에서 높은 실적으로 다른 근로자들의 모범이 되는 당찬 여성을 일컫는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고취하는 노래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노래가 인기를 끌던 2000년대에 들어와 남성들의 가사분담을 강조하는 드라마와 노래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살펴주는 눈길 떠날 새 없고 젖어 있는 그 손길 마를 새 없네”라며 “내 가슴에 노래처럼 정답게 안긴 사람”인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안해(아내)의 노래’, ‘우리 집사람’ 등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우리 며느리’란 노래도 나왔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여전히 강조되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가사와 육아 분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의 사고 변화, 연애결혼의 증가, 시장활동을 통해 경제적 능력을 갖춘 여성의 등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2007년 평양에서 만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인 30대 후반의 여성은 “대학에서 처음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세대주(남편)보다 내가 생활비를 더 많이 벌고 있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은 세대주가 한다”며 “이제 도시의 젊은 세대들은 가급적 연애결혼을 하려고 하고, 가사분담도 당연시 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북한 여성들의 노력,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어머니날 제정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어머니날 제정의 의미에 대해 “후대들을 위해 천만고생을 낙으로 달게 여기며 사랑과 정을 바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높은 기대의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북한은 세계적 추세에 맞는 새로운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교육의 첫 출발인 가정과 어머니의 역할에 주목했다. 북한의 언론들도 “조국의 앞날을 책임질 후대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여성들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며 교육적 측면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날을 기념해 출시된 화장품과 화장품판매점의 모습. 화장품이 어머니날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이다. 
어머니날을 기념해 출시된 화장품과 화장품판매점의 모습. 화장품이 어머니날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이다. 

꽃과 축하장으로 고마움 표시
어머니날에 북한의 아들딸들은 기념품상점에서 꽃과 축하장(축하카드)을 사고, 화장품 등 선물을 마련해 드린다. 김정은 위원장이 “어머니날에 꽃을 사다가 어머니나 아내에게 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말한 후 꽃을 드리는 하나의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남쪽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처럼 북한에서도 어머니날 가장 많이 찾는 꽃은 카네이션과 장미라고 한다.

“궂은 날 마른 날 가림 없이 우리네 형제를 키우느라 고생 많으신 어머니에게 그리고 또 제가 대학교 공부를 잘해서 훌륭한 일꾼 되길 바라는 어머니에게 꼭 기쁨 드리려는 제 마음을 이 축하장에 꼭 쓰겠습니다.”

평양의 한 대학생의 말처럼 축하장에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내용을 담는다. 군 복무중인 아들딸들은 어머니에게 축하편지를 쓴다.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화장품이다. 어머니날을 맞아 북한의 주요 화장품 회사에서는 ‘어머니날 기념’이라고 새긴 화장품을 출시하고, 각 판매점에서는 어머니날 기념품 매장을 별도로 만든다. 

북한의 언론들은 매년 “어머니날을 앞두고 수많은 청소년들과 학생들, 젊은 부부들이 꽃방으로, 화장품전시장으로 물결쳐간다”며 “열두 자락 치마폭이 마를 새 없이 오만공수를 들여온 어머니의 정성과 헌신을 잊지 못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꽃다발이리라”라며 어머니날 풍경을 보도하고 있다. 

북쪽의 어머니들도 출산과 가사, 경제활동까지 떠맡아 가정에 헌신해왔다.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꽃과 선물을 전달하거나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풍경은 우리의 어버이날 모습과 아주 비슷해졌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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