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허경진 교도

[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경상남도 끝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 나는 통영을 좋아한다. 내가 꼭 통영을 가는 이유는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춘수 선생이 결성한 통영문화협회의 회원이 유치환, 김상옥, 전혁림, 윤이상이며 토지의 박경리 소설가, 극작가 유치진 선생 등 작은 도시인 통영이 낳은 문화예술가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예술가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곳곳에 있고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것이 통영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크고 가까운 예술가는 작곡가 윤이상이다. 일제 강점기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윤이상에게 통영지역 곳곳에서 들려오는 토속적 소리,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은 음악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윤이상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상경해 음악을 배운다. 작곡한 작품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고향으로 내려와 교사 생활을 하던 윤이상은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을 더 깊이 공부한다. 그리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중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 곡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받는다. 그 상금으로 파리에 유학을 가게 되는데 이후 유럽에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며 베를린 음대 교수를 역임하고 독일문화원에서 괴테 메달을 수여 받는 등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다. 그의 인생은 음악으로 꽉 차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 가사를 사용하고 해방 후에는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간첩으로 누명을 써 투옥 생활을 하는 등 고난의 시기도 있었으나 그는 작곡을 쉬지 않았고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많이 만들어 선보였다.

나 역시 작곡을 공부하던 대학시절 윤이상의 작품을 세밀히 듣고 분석하는 공부를 많이 했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고 그것이 주는 신비로움과 진솔함이 전 세계 음악인들에게는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통영교당에서 왼쪽으로 쭉 내려오면 윤이상 기념관이 있다. 이곳에는 윤이상의 일대기와 생전 그가 사용한 악기, 자필 악보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는 통영의 한 출판사에서 만든 윤이상의 책을 한 권 샀다. 제목은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으로 40세에 파리로 유학을 간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1956년에서 1961년까지 쓴 이 편지들은 그 시대 파리와 독일의 음악 상황과 우리나라 예술가가 세계적인 작곡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또 명성을 얻는 일보다는 항상 가족과 나라를 생각하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의 인품을 잘 보여줘 감동이 있는 책이다.

윤이상은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1995년 타국에서 영면한다. 그리고 그의 탄생 100주년인 2018년에 통영에 이장되면서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통영에서는 매년 윤이상 작곡가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2014년 개관한 통영국제음악당은 그 건축물만으로도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건물 앞 커다란 음표가 있고 지붕은 날개를 펴고 있는 갈매기를 형상화했다. 대공연장 앞 로비에서 펼쳐지는 바다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곳에서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매년 훌륭한 연주를 상시로 들려주고 있다. 특히 윤이상을 기리는 곳인 만큼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빈도가 높다. 실험적이고 철학적이며 다양한 생각거리를 주는 현대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통영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경험이다.

/강북교당

[2021년 10월 1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