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허경진 교도

[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9월은 가을의 시작이다. 가을은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것 등이 가을 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생각할 때 가을은 열매를 얻고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계절이기에 나의 정신적 열매와 그에 따른 수확을 이루기에도 분명 좋은 계절일 것이다. 내가 벌여 놓은 일들을 정리하고 넓히기만 했던 생각들에 깊이를 더하는 것, 한 뼘 더 성숙할 수 있는 요소들이 분명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런 계절에 함께 하면 좋은 음악을 추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음악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음악이다. 피아졸라의 곡은 그냥 가을 그 자체다. 어떤 한 곡을 꼽지 않아도 모두 가을과 잘 어울리는 요소가 잠재돼 있다. 탱고의 나라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피아졸라는 탱고 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접목한 음악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곡 ‘리베르탱고’ 외에도 ‘사계’, ‘망각’ 등의 곡이 있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로 이를 기념해 많은 연주단체에서 그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모든 곡이 탱고 음악 특유의 쓸쓸함을 담고 있어 가을에 감상하기 좋다. 

다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곡은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자주 듣는 곡인 미국의 현대음악작곡가 윌리엄 볼콤의 ‘우아한 유령’이라는 곡이다. 이 곡은 미국에서 성행한 재즈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랙타임에 클랙식 음악을 섞어 만든 곡으로 특유의 당김음 리듬과 서정적인 선율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곡이다. 이 곡은 작곡가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곡으로 말 그대로 우아한 춤곡 같은 느낌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젊은 연주자들이 이 곡을 자주 연주해 실황으로 들어본 경험이 몇 번 있는데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피아노 독주 버전과 바이올리스트 양인모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버전 둘 다 너무나 감미롭고 좋아서 이 가을에 꼭 추천하고 싶다. 

다음은 카푸스틴의 곡이다. 카푸스틴은 우크라이나의 작곡가로 러시아 클래식음악에 재즈의 특성을 가미해 많은 곡을 작곡했다. 작년에 타계한 이 작곡가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해 많은 음악 활동을 했다. 제목들이 소나타, 연습곡 등으로 고전클래식음악 제목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곡을 들어보면 재즈의 느낌이 강해 새로운 음악감상의 기회가 될 것이다. 너무 재즈스럽지도, 너무 클래식스럽지도 않은 그 장점들만 모은 느낌이 들고 약간은 춤추는 듯한 리듬들이 따뜻한 느낌을 주어 가을에 기분 좋게 감상하기 좋은 음악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연주하는 ‘Eight Concert Etudes, Op. 40’을 추천한다.

피아졸라, 볼콤, 카푸스틴 이렇게 3명의 음악가를 소개했는데 이들의 음악이 가을에 잘 어울린다는 것과 또 모두가 2개 이상의 장르를 결합해 음악을 재창조한 음악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장르로 분리돼 규정지어지던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이 가을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제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해, 버릴 것은 버리고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면서 비움의 풍요로움을 맛본 하루였다. 이렇게 시작하는 가을이 꽤 좋다.

/강북교당

[2021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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