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교무
홍대선 교무

[원불교신문=홍대선 교무]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만나는 분이 있다. 그분은 동네에 있는 폐지를 모아 수거하는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다. 손수레에 폐지를 주워 한곳에 모아 판매하거나 고물상이라 불리는 곳으로 바로 옮겨 판매하는데 그 금액은 그리 크지 않다. 그들을 보면 나이가 많은데 자녀들은 뭐하길래 부모님을 저렇게 고생시킬까 하는 시비하는 마음과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가려는 모습에 응원하는 측은한 마음으로 내 마음이 나뉜다. 마음이 나뉘는 기준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표정에서 나뉘는 것 같다.

폐지를 주는 누군가와 웃으며 대화하거나 편안한 표정으로 폐지를 옮기는 모습을 보면 응원과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고, 많이 힘들어하시는 표정으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 한 번도 보지 못한 누군가에 대한 시비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보살은 보시하면 상에 머물지 않는 이유로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다. 내 마음이 나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나의 분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삶은 각자가 정해진 대로 또는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 상대의 삶을 바라보며 스스로 편안과 불편을 만들고 보는 것마다 분별하며 앎을 얻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독단과 독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별에서 출발한 독단과 독선에 빠지지 않으려면 상 없는 보시(布施)를 해야 한다. 스스로 행하는 가운데 무상보시(無相布施)를 어떻게 실천할지를 연마하며 베풀었다는 나의 마음은 고물상에 보내어 참회로 재활용하고, 무상보시는 사은에 대한 보은행으로 생각해 무심(無心)으로 끊임없는 자비를 베풀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삶에 나퉈지게 된다.

이제는 분별이 가득한 마음으로 스스로 만든 세상에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변하는 자연처럼 상 없는 보시로 서로가 한량없는 복덕을 주고받으며 더 이로운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세상을 함께 만끽하면 좋겠다.

/훈산학원교당

[2021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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