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교무
홍대선 교무

[원불교신문=홍대선 교무] 밤에 내린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 혹시 창문이 열려 있을까 생각해 확인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다시 창밖을 보니 비도 거의 멈추고 우산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한참을 보다 창문 아래쪽을 바라보니 장수말벌 한 마리가 창에 붙어 있다.

장수말벌은 벌 가운데 가장 큰 종에 속하고 꿀벌보다 더 멀리 높이 날 수 있지만, 많이 내린 비로 날개가 젖어 움직이지 못하니 창에 붙어 비를 피해 쉬는 듯하다. 비가 멈추고 날개에 묻은 빗물도 어느 정도 마를 때쯤 조금씩 움직이며 떠날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장수말벌은 꿀벌들에게 피해를 주고 강한 독성으로 인해 인간에게도 피해를 주는 곤충으로 알고 있다. 인간도 만나면 피하는 장수말벌도 내리는 비를 돌파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또 하나를 배우게 된다.

정산종사는 외수양의 첫 번째 공부로 처음 공부할 때는 밖에서 유혹하는 경계를 멀리 피하는 “피경(避境)”을 말씀했다. 우리는 모기나 파리와 같은 곤충을 만났을 때는 피하지 않지만 장수말벌을 만나면 벌침에 혹여나 쏘일까 하는 마음에 벌을 피하는 행동을 한다. 살면서 장수말벌에 쏘인 경험은 없어도 독의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위험성도 인지하고 피하는 것이 동물적 본능이지만 이 관점이 사람과 사람 사이로 바뀌면 위험을 인지해도 돌아가지 않고 돌파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벌침은 치료라도 가능하지만, 위기에 돌아가지 않고 돌파하려는 인간의 ‘자만심, 자존심, 자괴심’의 아침(我針)과 ‘안다는 착각’의 만침(慢針)은 모두에게 더 큰 위험이 되기에 돌파만 하려는 아만심보다 돌아가려는 피경으로 경계를 파괴하는 파경(破境)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나에게 수시로 내리는 경계의 비를 안다고 착각해 자만하지 말고, 장수말벌처럼 파란고해에서 잠시 벗어나 익어가는 가을의 모습에서 자기의 본 모습을 찾는 미덕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훈산학원교당

[2021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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