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교무
김경일 교무

[원불교신문=김경일 교무] 사연 4조의 세 번째는 나(懶)다. 정전에는 만사를 이루고자 할 때에 ‘하기 싫어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게으르거나 행하기를 싫어함의 의미다. 세간의 일이든 출세간의 일이든 게을러서 실행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성공과 성취가 있겠는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팔십 먹은 노인이라도 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인생이 쉽지 않고 수행이 녹록치않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면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가다가 중도에 해찰하고 게으르고 자포자기하면 애초에 아니 감만 못하다. 도가의 공부도 뜻과 실행이 한결같아야 마침내 결실이 되고 공덕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장애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잠시 쉬면서 이래저래 해결할 궁리를 찾아서 다시 하면 된다.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일어나면 그만이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럼 왜 우리는 자꾸 ‘하기 싫어함’의 유혹에 빠지는 것일까? 

우선 첫 번째는 하고자 하는 목표나 서원이 묵어서 흐려질 때 하고자 하는 마음도 가라앉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서원이 있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방심이 되고 묵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챙기는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왜 이런 목표를 세웠는지 왜 이런 서원을 하게 됐는지 그 초심을 다시 불러 일으켜서 늘 마음이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래야 하기 싫은 마음, 게으른 마음이 물러가고 용맹정진심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몸이 병약해져서 그 시간이 오래가면 자신도 모르게 게을러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계획과 목표를 잠시 접어두고 치료에 전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다시 처지에 맞는 정진계획을 세워서 나가는 것이 합당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세 번째는 한 두 번의 실수가 생겼을 때 하고픈 의욕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 새 옷을 입고 지내다가 한 번 더럽혀지면 주의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처럼 공부나 사업을 막론하고 처음에는 정성을 다하다가도 한두 번 실수가 있게 되면 점점 하기 싫은 마음이 나서 결국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큰일을 목표하거나 서원하는 사람에게 이런 때가 참으로 위험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큰 사업이나 큰 공부에 어떤 고비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좋다. 세상만사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실수는 병가(兵家)의 일상만이 아니라 우리 재가 생활인이나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수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도록 용맹한 마음을 가지고 ‘하기 싫은 마음’을 넘어서야 한다. 

네 번째는 함께하는 동지나 도반이 없으면 쉽게 나태해지는 경우가 있다. 큰 사업은 동지들과 함께해야 지체함이 없고 큰 공부는 도반들과 함께해야 용맹정진심이 나온다. 동서남북 전후좌우 스승님과 동지와 도반이 서로 격려하고 경책하며 문답하고 지도가 함께할 때 큰 사업이 성공되고 큰 공부가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등지고 나 홀로 토굴에 들어가는 용맹정진보다 일상에서 동지 도반과 어울려 함께하는 동고동락 화합 정진에는 게으름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021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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