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니체를 부처님의 반열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뿌리 깊이 종교적인 사상가였다. 신의 사망을 선고하고 기독교의 신념과 가치관에 끊임없이 채찍을 가했던 것은, 그가 신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물론 외가의 할아버지들 모두 목사였다. 그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바젤대학교의 교수가 됐으나 건강이 안 좋아 교수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프리랜서가 됐다. 유럽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고독한 삶을 살았다. 대단한 여자였던 것 같은 루 살로메와의 모호한 관계를 제외한다면 연인도 없었다. 다만 매독에 걸렸다. 1889년 1월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차를 끌던 말이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착란을 일으켰는데, 니체는 그 말을 부둥켜안은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마 매독이 뇌에 미친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1900년 사망할 때까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반쯤 마비된 상태로 살았다.

자 그럼 필자의 글보다는, 라즈니쉬의 법설 중에 니체에 관한 평을 듣는 것이 좋을 듯하니 인용이 길더라도 양해하시라.

“니체는 그 인물됨이 예수·모세·모하메드·마하비라·붓다·자라투스트라와 비견될만한 인류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깨칠 수도 있었으나 뭔가 잘못됐다. 그는 장애물을 돌파하지 못하고, 신경쇠약을 일으켰다. 잘못된 것은 서양이라는 환경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서양 전체의 지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 책임은 기독교 교회에 있다. 기독교가 범인이다. 교회는 니체와 같은 많은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깨칠 가능성을 파괴해버렸다. … 그 교회는 저항할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을 산 채로 화형시키고 그들의 책들을 태우고 금서목록에 올렸다. 기독교 교회들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질적인 파시스트적 단체들이었다. 20세기의 파시즘, 나치, 공산주의 이 세 종류의 위험한 독재주의적 풍조가 기독교 때문에 출현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 니체는 기독교에 심한 염증을 느끼게 됐는데, 그런데 그는 기독교만 알았을 뿐 동양의 선(禪)이나 수피즘 같은 것은 전혀 몰랐다. 만일 그가 이런 것들을 알았으면 전적으로 다른 인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니체는 고타마 붓다를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던 것은, 별도 아니요, 일출과 일몰도 아니고, 미모의 여자들도 아니고, 장미들도 연꽃들도 아니란 것이다. 그럼 뭣이겠는가. 여러분은 생각이 잘 안 될 것이다. 그가 감명받은 장면은 군인들이 번뜩거리는 칼을 차고 그 칼들이 햇볕에 반사되면서 행진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군인들의 군화가 부딪치는 소리가 모차르트나 바그너의 음악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이었다. … 20세기의 아버지인 니체 말이다. 그는 두 세계 전쟁의 아버지였고 어쩌면 제3의 전쟁도 기다렸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미쳤고 그런 결과는 당연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신비가인 터툴리안은 ‘나는 신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내가 자랄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신이란 사실이냐 가공의 인물이냐고 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급을 위해서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니체는 한 사람의 부처님으로 자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의 부처님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2021년 11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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