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어느 영국 기자가 간디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가진 것도 없는데 독립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느냐?” 간디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데 왜 그걸 의심해야 하는가?” ‘용기’를 말하는 글에 간디를 떠 올린 이유는 그가 70이라는 나이에 탄트라 실험을 한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간디에 대해 다른 것은 잘 모르지만 이 개인적인 ‘실험’을 했다는 용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세칭 마하트마 간디는 ‘위대한 영혼 간디’란 뜻으로, 왜 그렇게 불렀는지 의아하다. 그런 수식어가 없었어도 그는 인도에 대해 꿈을 가진 ‘위대한 영혼’이었다. 그런 수식어를 붙여놓고 간디 살해를 호도하려 했던가.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의 위대한 인물로 간디와 레닌을 꼽았다. 간디와 레닌은 한 살 차이, 두 사람 다 변호사가된 것이 1891년이었다. 차별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꿈꾼 두 사람의 목표는 같았지만 걸어간 길은 달랐다.

간디의 본명은 모한다스 까람찬드 간디다.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진정한 인간 정신의 요람’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힌두교인이면서 무신론에 가까웠던 그에게,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을 보여주며 구체적인 실행의 원리를 보여준 것이라는 고백일 것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비폭력의 힘이라는 방식으로 저항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인도인은 그 이름만 듣고서도 그 사람이 카스트의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간디’란 이름은 힌두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인도에는 좀 이상한 관습이 있다. 갖고 있는 직업의 내용이 그 성(姓)으로 됐다. ‘간디’란 이름은 그냥 향수나 향료를 파는 사람의 이름이다. 간디의 선조들 중에 누군가 향수를 팔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간디’란 향수를 의미한다.

간디는 막스 베버와 같이 국가는 본질적으로 폭력기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끼던 ‘국민회의파’가 신생 인도 국가의 부속물이 되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보고 계속 절망했으며, 국가의 개혁 능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인도의 독립을 쟁취한 뒤, ‘폭동 지역에서 경찰과 군대를 철수시켜라, 파키스탄과의 전쟁 중임에도 국고에서 파키스탄의 몫을 넘겨 줘라’는 등 국가 권력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제안을 했고, 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당시 정부는 간디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파키스탄에 돈을 지불했다. 그리고 그 단식은 나두람 고드세로 하여금 간디를 암살할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간디가 구상한 인도의 새로운 헌법은 절대적인 평화의 관점에 서있었는데, 일본의 평화헌법보다도 훨씬 더 나아간 것이었고 그 때문에 간디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패전 후 1946년에 제정된 일본의 평화협정은 제9조에 ‘전쟁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을 명시했다. 간디의 신헌법 제안문이 전인도의회 의장에게 전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암살당했다. 1948년 1월 30일 새벽 5시 30분경, 간디는 아침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다. 그는 이미 분단이 되어 나라가 세워진 파키스탄에 가서 수상인 진나를 만나 다시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그는 파키스탄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1년 11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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