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49장에서는 “남을 해하면 해가 나에게 돌아오나니 곧 자기가 자기를 해하는 것이 되며, 남을 공경하고 높이면 이것이 또한 나에게 돌아오나니 곧 자기가 자기를 공경하고 높임이 되나니라”라고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인과의 원리는 자작자수(自作自受), 곧 자기가 지은 바 모든 선악의 업은 반드시 자기가 되돌려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악하거나 해로운 행동을 할 경우 그 업의 과보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며, 반대로 남에게 선을 행하거나 이익을 줄 경우도 또한 언젠가 그 결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이 기본 원리다. 그러므로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가 항상 선한 생각과 말, 행동을 해 영원한 세상에 끊임없는 복전을 장만하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줬다.

한편 업보차별경에 보면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사문(沙門)이나 불보살을 대상으로 할 경우 그 죄업이 더 크고, 반면 선업도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행할 경우 그 복덕이 훨씬 커진다고 했다. 부처님과 보살은 진리의 근본 이치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스승님들이다. 이러한 스승님들께 정신 물질로 공양을 하거나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일들은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이 된다. 이미 대종사의 새 정법회상을 일찍 알아보고 귀의해서 살아가는 원불교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있어 법 높은 스승을 잘 모시는 것은 당연하며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 교도들은 항상 큰 복을 짓고 있다. 

그런데 스승을 잘 모시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면서도 큰 죄복의 과보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자신보다 부족하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존경심’을 가지는 일이다. 사람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부처님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존경’하라고 하셨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곧 서로가 서로의 바탕이 되는 것이요, 아무리 잘났다 한들 혼자서는 그 잘남도 아무 의미가 없다. 잘나고 못난 것도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 대들보만 100개를 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서까래와 지붕이 있어야 하고 벽과 문이 문손잡이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집은 제 구실을 못한다. 이처럼 세상 모든 존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을 따름이니, 누가 잘나고 못났다거나 귀하고 천함이 애초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법 높은 스승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천시하는 사람도 차별 없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 사람이 바로 참 진리를 알고, 영원한 세상을 통해 한량없는 복을 지을 줄 아는 참 불제자일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1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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