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원로교무] 간디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힌두교인으로 머물렀을 뿐, 속마음은 기독교인이었고 동양의 깊은 사상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자서전의 제목만 봐도 그의 사상적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선(禪)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진리에 접근하려면 일단은 선이란 어떤 분위기인지를 알아야 되고, 선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30년간 한 마디도 안하고 얼굴은 미국의 영화배우 빅터 머추어와 비슷한 분위기였던 인도의 성인 메허 바바(Meher Baba)는 그 당시 뭄바이 근처인 뿌나에 있었는데, 간디가 진리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비심을 내어 전보로 간디를 불렀다.

물론 말을 안 하고 제스처로 소통하는 메허 바바인지라 그와 함께 30여 년을 보낸 그의 비서 아디 이라니가 주선했다. 라즈니쉬의 이야기로는 아디가 한 번 자기를 찾아왔었는데 아주 기품이 있으면서 멋지고 우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였던 모양이다.

그 비서가 보낸 전보 내용은, “만일 당신이 정말 진리를 알고 싶다면 이리로 오세요. 메허 바바님과 며칠만 같이 있어보세요. 스승님은 대단한 자비심을 내신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리에 그렇게 목말라하시는데, 당신이 지금 하는 것은 바른길이 아니랍니다.”

이런 제의에는 누구도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간디 역시 역정을 냈다고 한다. 정치가란 대부분 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종교란 기본적으로 단순성·명료성·지적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반해, 정치가란 이런 일들과는 인연이 먼 교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회의원이 되고 수상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종교인은 자기와 놀기도 바쁜 사람들인지라 다른 사람과 희희낙락거릴 틈이 없다.

간디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 직업을 가졌으며 영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서 일했다. 그 당시 매우 유명한 기독교 전도자였던 앤드루스는 간디의 막역한 친구였다. 그런 그가 기독교로 전향할 수 없었던 것은 그렇게 했다면 인도인들이 그를 팽개쳐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간디와 그의 아들인 하리다스 간디와의 관계를 보면 간디의 또 다른 얼굴을 엿볼 수 있다. 아들을 자기 생각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뒀다. 하리다스는 그렇게도 학교에 다니고 싶어 했지만 간디는 인도의 모든 교육시스템이 붕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간디의 모든 자녀가 다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리다스만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간디의 집에서 도망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을 뛰쳐나간 아들에 대해 그는 대노했다. 간디는 하리다스를 다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아들로서 인연을 끊었다. 그런데 간디의 아들이어서 그랬는지 하리다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나는 모하메단(무슬림)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늘 힌두교와 모하메단은 모두 같은 형제라고 했고, 『꾸란』과 『바가바드 기타』나 『성경』은 모두 같은 메시지라고 했으니 어디 좀 봅시다.” 그런 후 마리다스는 무슬림으로 개종했고, 격노한 간디는 그의 아내에게 자기는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1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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