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다섯, 넷, 셋, 둘, 하나.”
제야(除夜. 섣달 그믐날 밤)에 평양 김일성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평양시민들이 무대 중앙에 마련된 대형스크린에 시계가 비춰지자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그리고 시계 바늘이 자정을 가리키자 대동강 위 밤하늘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공연무대에는 인기 가수들이 나오고, 왕재산예술단원들이 ‘북한식 칼군무’도 선보인다. 평양시민들은 직장·조직 단위로, 가족·연인·친구끼리 털모자와 목도리, 장갑으로 무장한 채 축하공연과 불꽃놀이를 보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평양의 청년들이 새해맞이 축하공연을 즐기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평양의 청년들이 새해맞이 축하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정은체제  후 대규모 제야행사 등장
대규모 무대를 설치하고 축하공연을 하는 평양의 제야행사는 김정은체제 출범 후 등장한 신풍속도다. 북한도 1945년 해방된 첫 해에는 남쪽에서 보신각종 타종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대동강변 대동문과 연광정 사이에 있는 평양종을 치는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 후 제야행사는 사라졌고, 실내에서 하는 어린이들의 새해맞이 공연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김정은체제 출범 다음 해인 2013년 12월 31일 밤 북한은 모란봉악단의 신년 경축공연과 함께 ‘축포’를 쏘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제야문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2019년에는 수백 대의 드론을 밤하늘에 띄웠고, 지난해 공연 때는 ‘인민의 환희’라는 곡을 부르며 랩을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행사가 거듭될수록 관람객들의 호응도도 높아지고 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들어 공연 모습을 화면에 담거나 갖가지 캐릭터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 환호를 보내며, 행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한의 전통적인 모습과는 거리고 있고, 젊은 세대의 감성이 반영된 축제양식이다. 

물론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제야 풍경이 다르고, 세대별·가정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남쪽에서는 직장별로 종무식을 하고, 동료·친구·가족끼리 송년회를 한다. 반면 북한에서 연말에 가장 많이 쓰는 용어는 ‘총화(總和)’다. 특히 12월은 ‘연(年) 생활총화’가 있는 달이다. 

북한에서는 ‘재정총화’, ‘사업총화’, ‘생활총화’ 등 총화란 용어를 일상적으로 쓴다. 중국에서도 많이 쓰는 용어다. 남한에서도 자주 쓰지는 않지만 “글쓰기는 지나온 내 삶의 총화”라는 식으로 ‘결산과 평가’의 의미로 사용된다. 다만 재정이나 사업총화(결산)는 모든 나라에서 기관별로, 회사별로 하는 일상적인 활동이지만 ‘생활총화’는 과거 사회주의권이나 북한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열린 새해맞이 축하공연에서 왕재산예술단 여성단원이 ‘칼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열린 새해맞이 축하공연에서 왕재산예술단 여성단원이 ‘칼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새해맞이 축하공연이 끝나고 자정이 되자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다.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새해맞이 축하공연이 끝나고 자정이 되자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다.

연 총화 마치고 송년회 모임
생활총화란 북한 주민들이 당이나 근로단체와 같은 소속 조직에서 주, 월, 분기, 연별로 모임을 갖고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와 활동을 반성하고 상호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에서는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소년단에 가입하고, 이후 누구나 하나의 정치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해 활동하기 때문에 생활총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조선노동당 당원들은 소속 당세포, 비당원인 경우 청년은 청년동맹 초급단체(지부), 소년단원은 소년단 조직인 분단(학급)에서, 여성은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초급단체, 직장인은 직업동맹 초급단체, 농민들은 농업근로자동맹 초급단체 등 각자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서 생활총화를 한다. 

일반적으로 북한 밖에서는 생활총화를 전 주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임에서는 직급의 차이를 두지 않고 상호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생활총화는 간부들의 횡포나 ‘갑질’을 걸려내는 기능도 한다. 그리고 생활총화 평가를 통해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승진하고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남한 식으로 표현하자면 일상적인 생활총화 모임을 통해 ‘인사고과’가 매겨지는 셈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소년단 시절부터 쓰게 되는 ‘생활총화 수첩’의 기록과 평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생활총화를 하는 요일은 직종별로 조금씩 다르다. 사무원이나 학생들의 경우 매주 토요일에 40~50분정도 진행하고, 노동자·농민 등 생산직 근로자들은 도별로 지정된 휴일 전날에 한다. 월 생활총화는 매달 마지막 생활총화 요일에 그 달에 나타난 결함을 종합적으로 분석 비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분기 생활총화는 주·월 생활총화와 달리 기관 단위로 진행되며, 상급조직 간부의 참석 하에 당총회·단체총회 형태로 이뤄진다. 
특히 12월 말에 하는 연(年) 생활총화에서는 각 조직별로 연 초에 세운 계획이나 할당된 임무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가 중요한 평가대상이다. 개인별로 1년 동안 자신이 달성한 성과와 잘못을 해당 조직 앞에 얘기하고, 다른 동료들의 충고를 듣거나 조언하는 상호비판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상호비판의 내용을 미리 동료끼리 입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19사태로 국경봉쇄를 하기 전인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새해맞이 축하공연과 불꽃놀이를 평양 시민들이 즐기고 있다.
코로나19사태로 국경봉쇄를 하기 전인 2019년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새해맞이 축하공연과 불꽃놀이를 평양 시민들이 즐기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형식적인 태도를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생활총화를 통해 조직활동과 사업태도에서 “결함과 부족점부터 먼저 찾을 줄 아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며 “자기에게 무슨 부족점이 있는가 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스스로 결함을 찾고 고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연 생활총화를 잘 끝내야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연 생활총화가 끝난 뒤에야 조직이나 직장 간부 집에서 술과 노래를 곁들여 송년모임을 갖거나 가족이나 동료끼리 모임을 갖는다. 식당을 빌려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문화도 생겼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제야에 김일성광장에서 열리는 새해축하행사다. 많은 평양 시민들이 직접 광장으로 나가 이 행사를 즐기고,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생중계 되는 이 행사를 TV로 시청한다. 

북한의 연 생활총화나 송년회, 새해맞이 모습은 이색적이고 조금씩 변화를 해왔지만,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생활문화는 만국공통인 것 같다. 

코로나(COVID)19로 우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보신각 타종 행사를 하지 못할 것 같다. 북한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제야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힘든 한해를 보낸 남과 북 모두  연말연시라도 근심을 뒤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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