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엽 교무
유정엽 교무

[원불교신문=유정엽 교무] 남도의 많은 교당에서 교도들에게 “지금은 이렇지만, 예전에는 아무나 원불교 못 다닌다고 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자세히 말을 들어보면 대체로 교당의 시작과 성장은 비슷한 패턴이었다. 

지인을 통해 교법을 듣는 것만으로 그 수월성에 감복한 이들은 보통 학교장 이나 농협 조합장과 같은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였다. 몇 명의 요청으로 선교소가 시작됐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영향권에 있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교당으로 인도됐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교도의 숫자는 많지 않아도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공동체기에 ‘아무나 못 다니는 원불교’였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며 80년대 교화성장의 두 가지 원인을 발견했다. 첫째는 건강한 교법과 둘째는 수준높은 성직자이다. 깊은 깨달음을 현실에 구현하는 이사병행(理事竝行)과 사람이 아닌 진리와 당처를 신앙하는 법신불 신앙의 건강한 교리는 그 자체로 매우 경쟁력 있는 가르침이었으며, 대학 진학률이 15%도 안 되던 때 대학을 나온 우수하고 청렴한 성직자들 또한 매우 매력적이던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의 교화 정체는 우리의 교법과 성직자가 과거의 경쟁력과 위상을 가지지 못한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대학의 정원이 더 커진 상황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경쟁력이 되지 못하며, 교법의 위대함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이웃 종교 역시 시대에 맞춰 가르침과 그 해석을 매우 새롭게 했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거대담론과 교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교단에는 삼동윤리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교리가 등장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 교단이 닫힌 공동체가 됐다는 점이다. 초창기 소태산 대종사와 선진들은 영산이라는 벽촌에서 몇십 명 안되는 소수였지만 창생을 구원하겠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교리에 세상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구제의 방법들인 거대담론이 담겨있었다. 우리가 진정 제중(濟衆)의 뜻을 놓고 있지 않았다면 끝없이 세상과 소통하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해결책과 가르침을 내놓았을 것이다. 

둘째로 우리 역량의 한계이다. 애석하게도 후진들은 개개인의 자질도 선진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 축적된 지식과 지혜도 빈약하다. 선진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당대 일류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을 설득시킬 만한 담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교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훈련법이나 교화단과 같은 미세담론이 아니라 정신개벽·영육쌍전·처처불상등의 거대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위해서도 교화를 위해서도 새로운 교리와 거대담론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여야 한다.

또한 미시담론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사실 우리 교단은 근래 몇십 년간 11과목·교화단·훈련과 같은 미시담론을 강조해온 바 있다. 이렇게 삶의 태도와 습관을 바꾸는 구체적인 실천은 방법론적인 문제이기에 작은 노하우가 매우 중요하다. 몇십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시담론의 형성도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예전에 원불교학과 학생들을 위해 책 읽는 방법을 정리한 적이 있다.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 책 읽은 것은 좋아했기에 나름 노하우를 정리해도 몇 장 분량은 됐다. 미시담론 역시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 자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종교의 ‘담론과 실천’ 모두 중요하지만, 실천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담론이 먼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 원불교의 교화와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급선무는 거대담론과 미시담론 모두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양평교당

[2021년 12월 2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