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교무
김도영 교무

[원불교신문=김도영 교무]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왔다. 임인의 뜻은 검은 호랑이를 뜻한다. 검은 호랑이는 리더십과 독립성이 강하며 열정적이고 큰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배려가 부족해 개인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새해가 오면 늘 한 해의 운세(運勢)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운세란 어떤 사람의 삶에 대한 정보를 예언해 보는 행위이다. 점복과 사실상 같은 의미이나 점복은 영적 존재의 개입 등 다소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운세는 그보다는 훨씬 비격식적이다.

서양에서 운세는 르네상스 시대 롬인들에 의해 주로 전파됐다.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는 동양의 역경을 비롯해 비서구권의 점복수단이 대중문화에 유입되어 운세를 점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새해 벽두에 운세를 보는 것은 다가올 불행을 미리 듣고 대처하려는 마음의 방어시스템이 그들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또는 앞길에 놓인 행복을 미리 들어서 그걸 희망찬 첫발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서이다. 

그들이 지난해 들었던 운세의 오차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울하고 불안한 오늘을 떨쳐버릴 덕담 한마디가 필요한 것이니, 들었을 뿐 확연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런 앞을 보고 싶은 갈증이 다가올 운세를 엿보도록 이끄는 것일 터다. 

동양의 가장 대표적인 점서(占書)인 주역(周易)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천하의 질서를 담은 예지의 창(窓)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절실한 수양서 또는 철학서로 읽혔던 까닭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역의 일단을 살펴, 올 한 해의 덕담으로 삼아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 인듯 하다.

주역은 누누이 현재의 처지에서 만족과 안일을 누리지 말라 한다.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는 한편 그에 순응해 따를 것을 강조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가 위에 있고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아래에 있을 경우 누가 보아도 안정된 상태인 듯 하지만, 운세가 꽉 막힌 부괘(否卦)로 명명하는가 하면, 하늘과 땅이 뒤바뀐 상태를 태괘(泰卦)라 이름 붙이고 대지가 교류하는 편안한 상태로 보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주역의 정수는 서로 다른 사물들 간의 관계에 의한 변화와 결과이다. 질서에 순응하고 절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협력해 공동체의 발전을 이루고, 한사코 공생을 위한 법도를 지키라 한다. 주역은 결국 경험의 산물이다. 다만 순환이 있을 뿐, 물이 기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사 역시 인과(因果)의 질서에서 이탈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주역의 출발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변화가 각기 다를 뿐, 거기에는 반드시 추이(推移)가 있고, 그것은 예측 가능하다는 명증이 바로 주역이다.

새해를 맞아 점집들이 신년운세를 보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라고 한다. 점집뿐이랴, 요즘 젊은이들은 타로점도 많이 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신년운세’를 치면 관련 사이트 수십 개가 쫙 뜰 정도다. 신년운세를 본다는 것은 인과관계 중 올해의 결과를 미리 본다는 뜻이다. ‘주역’은 내가 바뀌면 그 인과관계 역시 변할 수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바라는 새해 벽두의 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았거나 몰랐거나 우리가 행한 베품과 나눔이 보은(報恩)이 되어 돌아온 것이 바로 복일 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올해 운세를 들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지난 한 해 동안 실천한 덕행이 어떤 것들이었을까를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가 받을 복의 크기와 앞일을 내다보는 실제적인 운세 풀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삼동인터내셔널

[2022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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