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교무
김도영 교무

[원불교신문=김도영 교무] 필자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의 『설림상(說林上)』에 나오는 말인데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이다. 경험이 풍부한 늙은 말일수록 길을 잘 아는 것처럼, 사람도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일에 능숙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게 가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에 대해 ‘꼰대’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근래에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조롱하기까지 한다.

참으로 씁쓸한 오늘이다. 여기에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그 이유가 있다. 경험이 지혜로 쌓이기보다는 자신만 옳다는 아집(我執)으로 굳어지고, 권위적이고, 일방적이고, 인색하고, 잔소리와 간섭이 심하다. 이는 옹고집과 의사 불통으로 나타난다. 또 자기 기준만 옳다고 강조한다. 대접받기를 당연시한다. 그러니 비꼬고 폄훼당하는 것이다.

꼰대는 ‘늙은이’ 혹은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늙은이’와 ‘선생님’이라고 해서 무조건 꼰대인 것은 아니다. 엄격한 의미로 꼰대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필자의 세월도 기성세대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꼰대라는 말이 거북하다. 그러니 다른 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한국의 ‘꼰대 문화’를 언론에 거론했다. 지난 2019년 9월에 영국 BBC방송은 자사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꼰대’를 ‘젊은 사람들로부터 무조건 복종을 기대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상대를 ‘나’의 기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버려야

‘젊은 꼰대’도 있다. 얼핏 보면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단어지만, 꼰대 의미가 점차 넓게 확장되면서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자신의 낡고 고리타분한 생각과 경직된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젊은 꼰대’라 한다.

교단도 106살이 넘었다. 조직이 크고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꼰대’의 경향이 나타난다. 교단은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조직이다. 입문이 오래되고 직책이 높다는 이유로 인간관계에 있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올바르지 못하다. 젊은 세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았으니 인생 경험, 수행의 경험도 다양하고 깊이가 있고 많을 수도 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쌓인 것이 노마지지(老馬之智)로 표현될 때 그 가치가 드러나지만, 그게 아니라 아집과 권위의식으로 표출된다면 젊은 세대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제아무리 약이 되는 좋은 지도와 말씀이라도 ‘나의 방식’으로 전하면 상대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처럼, 상대의 입 모양은 배려하지 않은 채 내가 먹기 편한 그릇에 음식을 내놓으면 아무리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라도 상대는 먹기 힘들다. 그러니 지도받는 이에게 좋은 의도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려면 상대가 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말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나’의 기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 자신도 온전히 바꾸기 힘든데 하물며 상대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오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조용히 모범을 보이며 상대가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면 모를까.

/삼동인터내셔널

[2022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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