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앎을 다루는 영역을 인식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앎의 유형, 앎의 방법, 가치 등을 탐구의 대상으로 한다. 지식의 유형을 분류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대체로 명제적 지식(사실적·논리적·규범적 지식), 방법 혹은 절차적·직접적 지식(감각지·직관지·암묵지·심미적 지식) 등으로 분류한다. 또는 프랑스의 메를로 뽕띠(M. Ponty)처럼 체화된 지식도 지식에 포함된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이런 분류에 의하면 종교적 앎은 직접적인 지식이자 직관지에 해당된다. 그러나 때로는 규범적 지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종교적 지식이 윤리와 도덕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종교적 지식은 단순한 윤리적 지식과는 구별된다. 종교적 지식은 깨달음이나 체험에 근거하는 반면 윤리적 지식은 합의에 의한 묵약지(Tacit knowledge)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지식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이다. 적극적으로 알아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앎이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경우 금기시하는 부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는 전자를 극대화하기 위한 소극적인 면으로 이해되지만 일반적인 앎과 종교적인 측면에서 앎, 깨달음, 지혜와 어떤 관계인지는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선후본말의 측면에서 후자를 선행조건이자 근본적인 요인으로 보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적극적으로 앎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면을 살펴보자. 교리 전반에서 ~임을 알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를 깨달으면 이라는 전제가 있다. 이는 깨달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원상의 수행에서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일원상 법어에서도 ~알며, 사은에서도 피은 보은 배은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사요와 삼학팔조, 솔성요론, 최초법어 등에서 깨달은 앎을 추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알아야 할 대상은 이처럼 분명한데 반해 어떻게 그런 앎을 추구해가는지 방법적인 지식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물론 훈련법에서 앎의 추구방법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경전공부,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정기일기, 상시일기를 비롯해 상시훈련법 등에서 앎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리연구를 비롯해 교리 곳곳에서 배움(학습), 견문, 학문, 의견교환, 체험 등을 암시하고 있다.

비록 이들 방법이 사리연구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하며 나아가 법위등급은 그런 앎의 등급화를 명시하고 있지만 시비이해 뿐만 아니라 이치에 대해 과연 어떤 방법이 다른 방법에 비해 보다 적절한지 그 절차 과정은 좀 더 탐구의 여지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에서는 그 앎의 대상이 일반적인 앎의 영역까지 총섭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원불교에서는 일도 이치도 모두 앎의 대상에 포섭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선후본말은 분명하다. 이 점에서 시비이해 등에 대한 앎의 추구에서 소극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또한 지식과 지혜를 변별하기도 한다.

지식은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후천적으로 학습의 결과라면 지혜는 삼학수행의 체험이나 깨달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정신과 실천에 의한 앎을 중시한다. 그렇지만 지혜와 지식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지식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과연 제대로 된 지식의 학습 여부를 평가하고 피드백해주는 이른바 평가체제의 수립이며 이들의 경험적 근거를 확인하는 일 등은 과제로 남는다.

/원광대학교

[2022년 1월 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