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종교에서 권리는 의무에 비해 익숙한 편은 아니다. 대체로 종교에서는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가치는 의무로 치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종교에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세속사회의 몫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종교 구성원도 사실은 한 자연인으로서 인간이자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다. 그렇다면 국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은 물론 권리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종교라고 해서 결코 이를 외면해서도 아니되려니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정전』에서도 ‘권리와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사은을 비롯해 자력양성의 강령에 보면 ‘인간으로서 면할 수 없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못한 원인으로 과거의 제도적 한계를 든다. 남녀의 권리의 차별, 교육의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남녀가 직업에 근실해 생활에 자유와 가정,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동등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하지만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면 걸림돌이 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권리나 의무를 제대로 이행되려면 자타 간에 자력이 기반이 될 때 가능하다. 

‘교육의 권리와 의무’에서 의무를 강조하는 것도 일견 그런 자력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수반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 직접적으로 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의무를 강조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물론 자력양성에서 남녀의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면 자력양성에 결함이 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주기 위한 기능으로써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방적으로 의무와 책임만을 강조하는가? 의무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로 권리의 대응어이다. 그리고 책임은 맡아서 행해야 될 임무이다. 따라서 의무는 책임보다 이행의 구속력이 강한 편이다. 

전자는 때로는 법적 구속력을 요구하는 반면에 후자는 윤리적이라고 보는 편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구속력이 강한 의무는 진리와 법의 지배를 요구받는 경우이고 그 다음이 인간의 양심의 의무이다. 그러나 부모은에서 부모에 대한 자녀의 피은, 보은을 강조하지만 이때 보은행은 부모, 자녀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부모 보은은 자녀가 행해야 할 보은의 도리이지만 동시에 부모로서 의무인 자녀 생육과 교육의 의무를 다 하도록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세의 인과로 보면 모두 부모이고 모두 자녀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도 부모 자녀 관계는 중다 복합적인 관계이다. 한 개인이 자녀이면서 부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은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교육의 권리는 개인 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사회도 종교 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학부모도 자녀교육의 책무자로서 동시에 교육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국가가 교육의 의무를 이행하는 경우 우리는 의무교육이자 기본권이라고 한다. 한 국가, 한 사회의 의무와 권리는 구성원의 눈 높이 수준과 삶의 질을 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는 권리와 의무, 책임 가운데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만, 주는 자가 곧 받는 자가 된다는 인과보응의 진리에 의하면 결코 일방적이거나 상반된 것은 아니다.

/원광대학교 

[2022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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