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영 교도 / 역삼교당
신효영 교도 / 역삼교당

[원불교신문=신효영 교도] 임인년 새해가 시작되는가 하더니 어느새 1월의 반이 지나간다. 새해가 되면 으레 사람들은 새해 계획들을 세우는데 우리 독자들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가는지 궁금하다. 각자의 계획은 다르더라도 살아온 지난날을 성찰하고 새로운 시작에 맞춰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부터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원불교에는 ‘보은미(報恩米)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원불교 대사전』에는 보은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원불교에서 법신불 사은의 큰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뜻에서 정성 다해 법신불 전에 올리는 쌀, 물품·제물. 일상생활에서 절약 절식한 돈 물건 등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보은미는 진리에 대한 보은 감사의 생활이기 때문에 그 정성이 쌓이고 쌓이면 자연히 원망심·탐욕심이 녹아나고 천지만물과 상생의 윤기가 건네서 상생상화의 활로가 열리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밥을 지을 때 한 수저씩 쌀을 덜어내 그것을 모아 시주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부엌에 작은 항아리 하나를 두고,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술씩 쌀을 덜어 모으셨다. 이를 좀도리 쌀이라고 하는데 ‘좀도리 쌀’은 ‘절미(節米)’, 곧 쌀을 아낀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이렇게 모여진 좀도리 쌀은 나중에 자식들의 등록금이 되기도 하고 집안의 긴요한 일을 해결하기도 했으며 자기가 믿는 종교 시설에 가져가서 시주하기도 했다.

밥 지을 때 덜어내는 쌀 한 술은 식구들이 먹어야 할 밥의 양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식구 모두 아니면 어느 누군가는 자신의 배를 덜 채워야만 했다. 즉 자신의 배고픔을 참아내는 희생을 통해 쌀을 모았고, 그만큼의 눈물과 정성도 함께 모여지고 그래서 더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해 우리 모두 항아리를 하나씩 준비하면 어떨까? 이 항아리에 자신이 오늘 먹고 쓰고 해야 할 재물의 일부를 덜어 놓자. 자신의 생활 규모에 따라 할 수 있는 만큼 덜어서 집어넣자. 재물만이 아니라 덜어내는 마음에 보은 감사를 가득 담아 정성을 쌓아 올리자. 그래서 그 항아리를 ‘보은 항아리’라 이름 붙이자. 항아리는 상징적인 의미이고 우리의 재물 중 일부를 담을 수 있으면 그게 항아리든 상자든 봉투든 아니면 스마트 기기이든 상관없다. 또 재물이 어려운 사람들은 신체적인 보은 활동, 예컨대 도로의 휴지를 줍는다든지 집 앞 도로를 쓴다든지 하면 될 것이요, 몸이 불편해 그것이 어려운 사람들은 말이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덕담이나 기도로도 이 보은 항아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은 항아리를 채우는 데 몇 가지 원칙을 생각해 본다. 첫째로 보은을 위한 재물은 자신이 쓰고 남은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쓰기 전에 미리 떼어 채우는 것이고, 둘째로 많든 적든 매일 매일 채워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중간에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씩 모여지는 재물이라도 어느새 많은 양이 쌓이게 되어 그것을 보면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욕심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때문이다.

전산종법사는 신년법문을 통해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일원대도 법륜을 힘차게 굴립시다’라는 주제로 대산종사님의 십대교훈을 공부의 표준으로 제시해 줬다. 또 이 중 ‘공생공영’, ‘동고동락’, ‘합심합력’은 함께 살아가는 길로써 하나의 자리를 알면 전체를 살리는 공심이 나온다고 했다. 우리 모두 새해에 보은 항아리를 하나씩 준비해 공생공영, 동고동락, 합심합력의 길을 열어보면 어떨까?

어느 심리학 교수도 “새해 결심의 내용은 자기중심적 결심에서 타인 중심적 결심으로, 마음에 관한 결심에서 행동에 관한 결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삼교당

[2022년 1월 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