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은 교무
임진은 교무

[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상담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 조항 중에서 가장 기본이자 으뜸이 되는 것을 꼽자면, 단연 ‘비밀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보장이란 상담자가 상담 과정에서 알게 되는 내담자 관련 정보에 대해서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국내외의 모든 상담 관련 학회마다 기본적인 윤리 규정으로 명시하면서 엄격하게 다루고 있는 조항이다. 상담자는 설사 무해한 정보라 할지라도 내담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내용도 공개해서는 안 되며, 말로 전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상담 기록을 공개하거나 전달하는 것 역시 금지된다. 사생활과 비밀유지에 대한 내담자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서다. 

비밀보장은 신뢰를 위한 필수 기반으로, 말하자면 내담자에게 안전한 환경,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해주는 것과 같다. 만약 내담자에 대한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서 피해가 생긴다면 내담자는 상담과 상담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데, 이것은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까지도 무너지게 만들 수 있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으로부터 받게 되는 충격이 그만큼 큰 탓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돕고자 상담에 임하는 사람은 이 부분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밀보장의 문제가 단지 전문적인 상담 장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고민스러운 상황을 듣고, 돕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명분 아래 다른 사람과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것도 비밀보장과 관련해 자칫 범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다. 가끔은 좀 더 잘 돕기 위해 실제적인 조언을 구해야 할 때도 있으나, 어쩔 수 없는 그러한 과정조차도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예전에 한 방송에서 본 어떤 청년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상당히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당시 자신의 처지와 집안 사정을 모두 알게 된 가까운 어떤 분이 그 이야기를 당신 친구들에게 속속들이 전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는 당황스러움과 배신감, 수치심으로 오랜 시간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역시 한 번쯤은 그 사람에게만 또는 그 사람을 믿고 한 이야기가 다른 곳에 전달돼 마음이 상하거나 난처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설사 본의는 아닐지라도, 그런 일은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성글게 하고 생각보다 진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누구도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 이야기를 가볍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비밀보장’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무게의 대화들 속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신뢰와 책임감, 배려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나에게는 혹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 일일지라도 주인공인 상대방에게는 훨씬 큰 무게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을 위한 안전한 울타리는 그 깊은 자각 위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2022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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