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도
이준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준원 교도]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별은 달보다 훨씬 작아 보이나 달보다 훨씬 크다. 가까운 친한 사이일수록 예절을 지키라고 했다. 이는 습관이 되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멀고 가까움의 원근과 친함과 낯섦의 친소 차이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원근친소는 나를 중심으로 한 지각의 차이다. 정약용 선생이 7살 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멀고 가까운 차이 때문이다”라는 시를 썼다. 세잔은 같은 사과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크기와 명암을 달리 그렸다. 원근과 친소의 차이를 타파할 때 혁신이 일어난다. 

회화사에서 피카소가 돋보이는 것은 원근법을 파괴하고 4차원의 세계를 그렸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권세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측근을 내치는 악역을 할 때 혁신의 기반이 다져진다. 미학은 역설, 혁신은 관계의 미학이다.

‘맞다 틀리다, 이롭다 해롭다’라는 시비이해는 원근친소에 따라 잣대와 눈금이 달라질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조직 경영은 물론 다양한 세대, 기관, 지역을 책임지는 국가경영의 지도자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소설에서 다소 과장된 면이 있으나, 중국 한나라 말기 영제 때 환관들의 농간과 횡포에 유래한 ‘십상시’ 사례가 교훈이 된다. 

경계를 처하여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욕심은 어느 누구할 것 없이 비슷할 것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절제력에서 차이가 난다. 권한은 절제된 권력이다. 조직의 규정이 정한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해야 한다. 인사권은 부하육성의 의무, 예산권은 자원활용의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 

이 의무를 무시할 경우에 조직의 지속적 성장과 재무적 안정을 저해하는 권력의 남용이 일어난다. 
 

개인적 원근친소에 따라
조직차원의 시비이해 판단
그르치지 않는지 경계해야

광화문 앞에 해태(해치라고도 함)가 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며 시비와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서양에서는 뿔이 하나 달린 사자(Unicorn Lion)이다. 정의의 심판관 상징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우주는 대소유무로 구성되어 있고, 세상은 시비이해로 운전된다”고 했다. 시비이해에 대해서는 정약용 선생도 언급했다. 사리에 맞고 서로 이로운 행동을 권장하였다. 대산종사는 “원근친소가 아니라, 소친근원이다”라고 했다. 가까이 있을수록 여리박빙 조심하고, 멀리 있을수록 더욱 더 챙기고 있는지, 개인적 원근친소에 따라서 조직차원의 시비이해 판단을 그르치지는 않는지를 경계한 뜻으로 새긴다.

전해오는 속담에는 세월 속에서 검증된 삶의 교훈이 담겨져 있다. “손자를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뽑는다”, “자식농사는 저 하기가 반, 키우기가 반”이라고 한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자식농사다. 부모자식처럼 가까운 인연일수록 서로 지켜야 할 인륜도리를 다해야 한다. 자식농사보다 더 어려운 일은 스승이 제자를 키우는 일이다. 사부는 정신의 스승이자 아버지다. 소태산 대종사가 “송규, 송도성 두 형제는 세세생생 함께 다닐 것이다”고 한 연유는 무엇일까? 어려울수록 신심이 빛나고, 스승이 떠난 다음에도 그 법맥이 끊이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 참된 제자의 보은 도리라고 본다. 

지난해 교단은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무언가 교훈을 남겼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보아서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 지역과 사람에 맞추어 법을 전하는 일, 일상생활 속에서 법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나 그 공덕은 다 같다. ‘교단 속의 나’이기도 하지만, ‘나 속의 교단’이기도 하다. 영산은 구법성지, 변산은 제법성지, 익산은 전법성지다. 원백성업을 지나서 원근친소를 떠나 법을 행하는 ‘행법성지 시대’가 되었다. 일상생활 속 행법성지의 주인공은 우리들 각자이다.

/솔로몬 경영개발원 소장

[2022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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