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신불 일원상 첫 정식 봉안
소태산 대종사 공식석상 최후법문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중앙총부 ‘대각전’은 소태산 대종사가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9년간 교법을 편 전법성지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은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은 법신불 일원상이 최초로 정식 봉안됐기 때문이다.

원기20년(1935), 중앙총부 내 복숭아 밭 위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287.59㎡ 규모의 대강당이 세워진다. 일식 목구조를 주된 구조로 하고 부분적으로 전통적 기법을 수용한 근대 건축 양식이 적용됐으며, 완공된 건물에는 한자로 대각전(大覺殿)이라고 쓴 현판이 걸렸다. 예회, 동하선 결제식·해제식, 유일학림 입학식·졸업식, 정기총회와 같은 교단의 각종 행사가 열리는 등 대각전은 초기 원불교 교화의 핵심 공간이었다.
 

중앙총부 대각전은 최초로 일원상이 정식 봉안된 곳으로 익산성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꼽힌다.
중앙총부 대각전은 최초로 일원상이 정식 봉안된 곳으로 익산성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꼽힌다.

특히 원기28년(1943) 5월 16일, 소태산 대종사가 “공부가 미숙해 견성을 못하였으면 철 모르는 아이 시절과 같고 공부를 많이 하여 견성을 하면 슬기로운 어른과 같다 하리라”는 내용이 포함된 공식석상에서의 최후법문을 편 곳이 바로 이곳 대각전이다.

같은 해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에 들자 발인식과 종재식도 대각전에서 거행됐다. 또 정산종사와 대산종사의 취임식도 이곳에서 치러지면서 ‘법통 계승의 자리’라는 상징성도 갖게 됐다. 하지만 반백년기념관이 건축된 뒤 중앙총부 대각전의 역할은 일부 축소됐고 현재 새벽 좌선과 목요법회, 기도식 등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서문 성 교무(효자교당)는 “중앙총부에 몇천억원에 달하는 건물이 생기거나 아무리 초라해서 쓰러져 간다 해도 대각전이 익산성지의 중심 건물이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는 총부와 대각전 정문을 따로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임 종법사와 퇴임하는 상사가 대각전에서 불전에 인사하고 손을 나란히 잡는다고 하면 대각전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굉장한 문화적 연출이 될 것이다”며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중앙총부 대각전의 위상을 강조했다. 다만 현재의 중앙총부 대각전은 소태산 대종사 당대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원기40년(1955) 원광대학 주도로 352.98㎡로 증축됐으며 소태산 대종사가 법설을 편 불단 위 법상의 진품은 원불교역사박물관 2층 소태산실에 전시돼 있다. 또 일원상도 후대에 다시 봉안된 것으로 처음 정식으로 봉안된 일원상의 존재 여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중앙총부 대각전을 시작으로 법신불 일원상을 모신 곳을 대각전이라 부르며, 기관이나 교당에서는 ‘신앙과 수행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가는 공간’인 대각전을 법회 등 각종 의식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각전 내부
대각전 내부
대각전 외부
대각전 외부
대각전 현판
대각전 현판

[2022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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