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사업의 출발지
법상, 소태산 법장 흔적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9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중앙총부 대각전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울림을 선사한다. 건물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적 흔적을 통해 여러 풍파 속에서도 교단을 지켜온 선진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각전 문을 열고 들어간 순례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오랜 세월이 묻어 나는 넓은 마루다. 교단 초기부터 이곳을 드나든 수많은 이들의 발자취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순간이다. 이어서 불단 정면을 향해 걸어가며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소태산 대종사가 설법을 했던 자리인 나무 법상(복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원불교역사박물관에 보관·전시돼 있는 진품 상단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설법 전·후 법장을 두드린 자국’은 순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불교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 대산종사의 가족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른쪽 자국은 정산종사와 대산종사가, 왼쪽의 것은 소태산 대종사가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소태산 대종사는 무거운 짐을 들거나 법장을 잡을 때 왼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원기40년, 정부로부터 대학 인가를 받기 위해 벌인 증축 공사의 흔적도 한눈에 찾아볼 수 있다. 불단 인근에 놓인 피아노 아래로 시선을 두면 눈에 띄게 다른 두 종류의 마루가 보인다. 그중 면적이 좁은 쪽이 나중에 추가된 부분이다.
 

원불교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법상(진품)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법장 흔적이 남아 있다.
원불교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법상(진품)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법장 흔적이 남아 있다.

중앙총부 대각전은 전무출신의 건강을 살피는 ‘법은사업’의 출발지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원기46년, 대각전에서 열린 정산종사의 회갑식은 전무출신 요양기관의 모체인 법은재단의 토대가 됐다. 회갑식 때 모인 성금이 법은재단의 설립 자금으로 쓰인 것. 정산종사는 이날 회갑식에서 “동지 여러분이 나의 부탁한 바를 잘 받아들여 행사는 식에만 그치고, 그 대신 교중의 장래에 유용한 사업 하나를 기념으로 이루어준다는 점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대각전은 한국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 낸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예회날이면 어김없이 일본 순경이 대각전을 감시했고, 6.25 전쟁 시에는 대각전(불단을 기준으로 동쪽 방)이 정산종사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한편 중앙총부 대각전에는 지역민들의 애환도 함께 서려있다.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는 대각전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큰 건물’로 꼽혔고, 구경을 하러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또 원기27년에는 당시 만석리(현재 익산 만석동 부근)라 불리는 곳에 큰 홍수가 났고, 주민들은 이곳 대각전으로 몸을 피했다.

소태산 대종사의 친견 제자이면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이백철 원로교무는 “원기25년부터 중앙총부에서 간사 생활을 하며 대각전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자비로운 어머니의 품 같은 대각전을 좋아한다”며 “법신불 일원상이 최초로 정식 봉안된 유일한 곳이라는 점만으로도 세계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2022년 3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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