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초청강연

지난 8일 교단혁신특별위원회가 반백년기념관에서 출범식과 초청 강연을 진행했다. 강사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소태산의 개벽 사상과 원불교의 교단혁신’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 내용을 정리해 교단혁신의 발판으로 삼는다. 
 

백낙청 명예교수
백낙청 명예교수

교단 4대를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가 교단에 큰 시험거리를 줬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결복교단으로 순조롭게 나아갈 것이라고 본다. 먼저 교단혁신과 관련해 상기했으면 하는 ‘소태산 사상의 위대한 사례 3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위대한 사례 첫째는 ‘한반도의 후천개벽 사상과 불교의 결합’이다. 동학 이래 유·불·선 3교의 결합이 한반도 특유의 사상적 모색을 이뤘지만, 수운·해월·증산은 불교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고 본다. 다만 수운이 유교를, 증산이 선도를 더욱 풍부히 계승한 면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종경』 서품에 밝힌 세계적 주교가 되기엔 미흡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말한 미래의 불법이 아니면 세상을 이끌 수 없다. 구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 새 불교와 회통하며 후천종교로 거듭나지 않으면 선천종교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둘째로 주목한 것은 ‘사은사상’이다. 소태산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은(恩)사상은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정전』 교의편 사대강령에서 밝힌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도달하는 그 깨달음의 경지가 은(恩)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는 은혜를 알고 보은을 실행하는 ‘지은보은’을 교리도상 인과보응의 신앙문에 배치했다. 그리고 신앙과 수행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삼학공부라는 진공묘유의 수행이 있어야 하고, 특히 삼학의 열매에 해당하는 취사, 즉 정의를 취하고 불의를 버리는 취사가 보은이 된다. 그런 공부와 실행 없이 무조건 은혜로 돌리고 감사생활을 하라고 말하면 안 된다. 우리의 감사생활이 ‘정신승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세 번째 위대한 사상으로 꼽는 것은 후천종교 특유의 조직을 창안한 것이다. 소태산의 독창적 기여는 바로 ‘출가 재가의 차별이 없는 출가제도’이다. 어떤 조직을 운영하면 요원들이 생기고, 오래되면 점점 요원들이 기득권 세력이 되어 조직을 부서지게도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이 회상을 위해 내놓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공부와 사업의 등위만 따른다’는 원리가 제대로 실현되면 어떨까. 그러면 원불교는 물론이고 다른 종교와 사회의 조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독창적 방안이 될 것이다.

교단혁신에 대한 소태산의 함의는 무엇일까. ‘교단혁신’에 대한 메시지는 전산종법사의 취임법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여기에서 ‘새롭게’가 바로 ‘혁신’이다. 이 작업을 하려면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 가운데 우리가 충실하지 못한 점은 어디인지 반조하고 참회하며 시작해야 한다. 

 

결복교단으로 가기 위한 
큰 시험 마주쳐

혁신 키워드는 
개교표어·평등회상·산 경전

먼저 개교표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실천하고 있는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 가르침에서 멀어진 감이 있다면 진심으로 참회하는 게 혁신작업의 과정이 돼야 한다. 또 개교표어 외 여러 표어에 담긴 동학 이래의 후천개벽 사상이 소태산 대종사의 새 불교 창시에 원동력이 되었음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두 번째로 평등회상을 복원하는 것이 혁신의 중대한 과제라고 본다. 소태산 대종사가 내세운 평등이념 가운데 교법정신에서 가장 멀어진 것은 재가출가의 평등이다. 교단에 대한 존중이 교단주의로 흐르면 이는 출가중심주의를 낳고, 이로 인해 출가자들 사이에 도덕적 해이와 갈등이 나타난다. 오랜 역사의 서양종교를 보면 거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재가들은 객으로 전락하고 출가교역자는 특권 계층화 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게 교단혁신의 큰 과제라고 본다. 하지만 혁신특위가 당장에 문제 해결 방책을 내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냉정한 진단과 진솔한 참여로 진행해 이소성대의 준칙을 따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혁신특위 홈페이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재가출가를 가리지 말고 전 교도의 의견을 수용해주기를 바란다. 

이어서 교헌 개정의 경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몇 해 전 마련한 교헌 개정안을 손보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교헌개정은 졸속으로 진행하면 안 된다. 종전의 개정안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 중 하나가 조계종의 종헌을 참조해 교정원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종법사는 조계종 종정 정도의 위치에 두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사병진을 표방하는 원불교에서는 맞지 않는 발상이다. 종법사가 공부의 어른이자 사업의 어른이 되는 것이 원불교다운 일이고, 이는 소태산 대종사 당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종법사나 교정원장의 권한을 조정하자면 어느 정도는 논의할 수 있겠지만 모형, 표본 자체를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재가출가로 구성된 교단혁신특별위원회 위원 12인이 교단 혁신을 위한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재가출가로 구성된 교단혁신특별위원회 위원 12인이 교단 혁신을 위한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다음은 ‘연원불 조항’이다. ‘석가모니불을 연원불로 한다’는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말한 내용이다. 이것을 교헌에서 논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느 면에서 불교고 어느 면에 불교가 아닌 지는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에 다 나와 있다. 또 교헌을 국가의 헌법과 빗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적어도 근대국가에는 전국민이 공유하는 경전이 없다. 그래서 헌법이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최고의 근원이 된다.

도가에서는 그걸 규정할 때 교헌이 아니라 도가의 소의 경전을 채택하면 된다. 교전대로 운영하는 회상의 규범이 곧 교헌이어야 한다. 지금 교헌에 ‘소의경전이 무엇’이라는 언급이 없진 않다. 하지만 교화 분야에 들어가 있어 교전을 교단 전체를 규정하는 항목보다 교화의 방편으로 보는 면이 큰 것 같다. 그 조항을 앞으로 옮겨 ‘본교는 『정전』과 『대종경』을 소의경전으로 한다’고 하면 연원불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교헌과 국가헌법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교헌 역시 대중과 충분하고 폭넓은 소통을 통해 해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교표어의 물질개벽에 대해 덧붙이고자 한다. 『대종경』 수행품 23장에 “나는 그대들에게 많고 번거한 경전을 보기 전에 이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을 보기를 부탁하노라”고 했다. 산 경전의 특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전이라는 점이다. ‘세상’이라는 경전은 시대마다 모두 다르다. 현재는 디지털 혁명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변화 역시 ‘물질개벽의 일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본주의나 디지털 혁명을 얘기하는 학자들에게는 이런 개념이 없다. 그들이 원불교의 용어를 모르는 데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이 변화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개념을 놓치고 있다. 

이런 산 경전을 제대로 읽고 온전한 정신을 챙겨 유념으로 대응한다면 나와 교단이 모두 바뀔 것이다. 전산종법사가 말한 세 가지 ‘새롭게’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나’이다. 하지만 이것에 꼭 순차가 있지는 않다. 삼학공부도 동시에 하듯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도 동시에 해야 한다. 물론 그 중심은 ‘나’를 새롭게 하는 공부다. 그러기 위해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교전을 통해 되새기고, 알았거든 실행하고, 산 경전을 잘 읽어나가야 한다. 그 기운을 받아 교단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ㆍ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2022년 3월 14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