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완 교무
정세완 교무

하고자 하는 마음, 편함에 안주하는 마음
우주만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두 가지 상대되는 현상이 항상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음과 양, 하늘과 땅, 남과 여, 밝음과 어둠, 생과 사, 행복과 불행, 정의와 불의 등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두 가지 마음이 상존하며 서로 다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따뜻한 이불속에서 더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일요일은 교당에 가야지’ 하는 마음과 ‘오늘은 봄꽃이 너무 화창하니 가족들과 꽃구경 갈까?’ 하는 두 마음입니다. 이 두 마음은 하고자 하는 마음과 하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 두 가지 마음을 주인의 마음과 손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천지는 주야로 순환합니다. 천지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당연히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습니다. 자연의 이법에 따라 공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밤을 좋아하고, 낮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꾼들은 술시를 좋아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잠 못 이루는 긴 밤보다 낮을 좋아합니다. 각자의 이해를 따라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생깁니다.
 

각자의 이해에 따라 정의·불의가 갈린다
또한 사람들은 본인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해를 따라서 정의와 불의도 선택합니다. 사실보다는 고정된 자신의 틀 속에서 좋아하는 색을 칠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옳고 그름의 시비를 따라 마음을 내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고 자신의 이롭고 해로움의 이해를 따라서 마음을 내는 사람을 중생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 가정은
무엇을 멈추고 살아야 하는가?” 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보살은 주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
주인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요란하지도, 어리석지도, 어둡지도, 그르지도 않는 마음, 매사에 중심과 중도가 갖추어진 선량한 마음입니다. 양심, 도심, 불심의 마음입니다. 손님의 마음이란 요란하고, 어리석고, 어둡고, 삿된 마음으로 매사에 중심과 중도가 어그러진 편협한 마음입니다. 욕심, 분별심, 중생심을 말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친구가 뜻밖의 횡재를 했습니다. 집사람이 친구 회사인 바이오 건강관리 회사에 간호사로 근무했었는데 이 회사가 대박을 터트려 대기업에 인수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그 회사 주식을 상당량 갖고 있었는데 그 주식을 팔아서 큰돈을 벌었답니다. 친구와 집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평소에 다니고 싶었던 여행도 다니고 고급 외제차도 타면서 폼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물어봤습니다. 지금 생활이 과거의 생활보다 행복하냐?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답하길 지금은 무엇이나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과정의 흥분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돈을 더 벌 이유도 없고 돈을 벌기 훨씬 이전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 버려서 행복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가 횡재할 무렵 다른 친구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횡재한 친구와 동갑이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1년이 지나면서 자신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그냥 스쳤던 일들이 지금은 아주 감사하게 느껴진답니다. 또 에이즈가 현재 다른 병으로 전이되지 않고 건강을 지키게 함에 감사를 느낀답니다. 
 

행복과 불행 요건 
우리는 이 예화에서 행복과 불행이 외부적 조건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인도품 34장에서 유허일(柳虛一)에게 서전(書傳) 서문을 읽으라 하시고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은 이 마음을 보존한 이요, 하걸(夏桀)과 상수(商受)는 이 마음을 잃은 이라’ 한 귀절에 이르매, “이 귀절이 돌아오는 시대에 큰 비결(秘訣)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대종경』 인과품 22장에서는 “사람이 모든 악행을 방자히 하여 스스로 제재하지 못하면 반드시 사람이 제재할 것이요, 사람이 제재하지 못하면 반드시 진리가 제재하나니, 그러므로 지각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막기 전에 제 스스로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중략)”라고 했습니다.
 

손님의 마음은 그치고 주인의 마음은 키워라
바를 정(正)자를 잘 살펴 보십시오. 그칠 지(止)를 쓰고 그 위에 한 일(一)자를 쓰고 있습니다. ‘심신 동작을 결단해야 할 순간, 경계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때 그 욕심과 중생심을 바로 그치라. 손님의 마음을 그치고 주인의 마음을 잘 챙기라. 그러면 모든 것이 반듯하게 되고 바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성자들께서 한결같이 가르쳐 주신 바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고비와 경계가 다가올 때 불같이 타오르는 중생심, 즉 손님의 마음은 결단코 그쳐 버리고 주인의 마음은 결단코 키워나가라. 그러면 바른 인생길이 열리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 해도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으면 사고가 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개인과 가정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도 결국은 경계를 따라 멈추고, 멈추지 못하는 능력을 따라 결정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나는, 그리고 우리 가정은, 무엇을 멈추고 살아야 하는가?” 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브레이크 없이 마구 달리고 있지는 않는지를 잘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회광반조를 잘해야 하는 것이죠.
 

법고마성(法高魔盛) 
마음에 철이 들고, 심력이 깊어지려 함에 마장 역시 성해집니다. 
새우는 자라서 왕새우가 되려 할 때 껍질을 벗는 과정이 수시로 있습니다. 이때 새우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어찌나 멀리 퍼지는지 10리 밖에서도 먹이를 찾는 고기가 몰려온다고 하며, 이러한 생사의 시험을 무사히 넘긴 새우만이 온전히 껍질을 벗고 왕새우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경계가 무서워서 껍질을 벗지 못하면 껍질에 갇혀 죽게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서도 정(正)과 사(邪), 시(是)와 비(非), 법(法)과 마(魔), 주인의 마음과 손님의 마음 사이에서 결단을 해야 할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다가옵니다. 인생시험을 잘 통과하려면 진리와 스승님들과 마음의 끈이 잘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일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육신의 끈인 부모와의 끈이 빈약해지거나 떨어지면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합니다. 영생을 살아가려는데 신앙의 끈, 마음의 끈이 떨어지면 육신의 고아보다 더 힘든 영생의 고아가 됩니다. 
 

수도인이 사모하는 일원상
대산종사께서는“수도인들에게는 늘 사모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면서 종종 “너는 무엇을 사모하며 살고 있느냐?”고 묻곤 했습니다.(사모 = 늘 닮아가려고 노력가는 마음)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사모하고 소태산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 교단의 주법인 종법사님을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법 받고자 하는 공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과 사, 시와 비, 법과 마의 갈림에서 결단을 해야 할 순간들이 와도 주인의 마음으로 대처하고 무량한 복혜를 장만해 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꿈에서라도 소태산 대종사님을 비롯해 스승님들을 뵙는 순간이 있습니까?
 

인일시지고 면영생지고
“한 때의 괴로움을 법 있게 잘 참으면 영생의 괴로움을 면하리라(忍一時之苦 免永生之苦)”는 정산종사 말씀처럼 일원상의 진리와 스승님들과 마음의 끈을 잘 이어서, 인생의 어떠한 욕심경계 앞에서도 주인의 마음을 잘 지켜나가는 주인공이 되고, 일생과 영생을 복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농성교당

[2022년 4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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