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완 교무
정세완 교무

정수라와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망월동 민주묘역에서 원불교 5.18 민주 영령 위령제가 끝난 후 김희용 목사에게 전화가 왔다. “교무님! 정태춘 박은옥 부부 가수의 이야기 <아치의 노래>라는 영화가 있는데 보러 가시죠!” 해서 5.18민주화운동 42주년에 목사님과 둘이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는 생소한 노래가 소개되었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었다. 이 제목 하면 1990년대 발표한 정수라의 노래가 먼저 생각난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생소했다.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시절, 가수가 발표하는 음반에는 마지막에 군가나 건전가요가 의무적으로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끼워 넣는 건전가요는 대부분 대중의 관심을 비껴갔으나, 예외적으로 인기를 끈 노래가 바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다. 정수라는 이 노래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연말 시상식에서 여자신인가수상을 수상했다.

반면에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불법 음반이라 공개적으로 부르지 못하는 노래였다. 그는 직접 소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그 암울한 시대를 생존하고 있었다. <아치의 노래>라는 영화의 내용은 정태춘이 노동운동 가수로서 활동하지 않는 이유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훔쳐냈다.

70년대, 엄마 아빠는 어린 남매가 밖으로 나가지 못 하도록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출근했다. 어린 남매는 안에서 성냥으로 불장난을 하다가 옷으로 이불로 온방으로 불이 번졌다. 남매는 밖으로 나오지 못 하고 연기에 질식해 죽었다. 이 신문기사를 보고 정태춘은 이 어린 남매가 되어서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죽은 것은 엄마 아빠 죄가 아니야. 너무 미안해 하지마!” 하는 가사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두 가수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는 암울한 시대에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각이다. 수행자 입장에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이 시기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비칠까? 
 

파도가 자기 안의 바다를 보려면 
파도라는 정체성을 
허물어야 한다

혜심선사의 파자소암(婆子燒庵)
어느 독실한 재가불자인 한 노파(老婆)가 세상에 등불이 될 만한 도사(道師)를 얻고자 조그만 암자(庵子)를 하나 지어 한 젊은 스님을 선객(禪客)으로 모셨다. 노파는 10년을 한결같이 음식이며, 의복 등 온갖 생활용품을 공급해 그 선객이 공부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하며, 그가 득도하기를 기다렸다.

10년 세월이 흘렀을 무렵, 노파는 그 선객의 공부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됐는가 싶어 시험해 보기로 했다. 노파에게는 묘령의 딸이 하나 있었다. 이 딸은 절세의 미인으로 매일 그 토굴에 음식을 날라다 주곤 했다. 노파가 딸에게 말했다. “얘야, 오늘은 공양거리를 가지고 암자에 가서 스님을 한번 껴안아 보고 수행 정도를 시험해 보거라.” 

이에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공양거리를 들고 암자에 올라갔다. 그리고 스님이 공양을 마치자 스님 무릎 위에 올라앉아 말했다. “스님 기분이 어떠세요?” 그러나 스님은 아무런 동요없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 내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자 처녀는 다시 스님의 품속에 스스로 안기면서 갖은 어리광을 부렸다. “스님, 저는 스님에게 안기니 무한히 기쁘고 즐겁습니다만 스님은 어떠신지요?” 이에 스님이 말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고목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하니 삼동설한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枯木倚寒巖 三冬無暖氣)’고나 할까.” 어머니의 명령으로 젊은 스님을 유혹하던 딸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소녀는 오래 전부터 스님을 사모했나이다. 저를 한 번만 안아 주세요. 제가 드리는 청을 받아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일언 지하에, “나는 수도를 하는 수도승(修道僧)이다. 내게 있어 여인은 사마외도(邪魔外道)다. 썩 물러가거라”며 고함쳤다. 처녀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공양구를 챙겨 집에 돌아와 스님과의 얘기를 낱낱이 어머니에게 고했다. 그리고 스님의 곧은 자세를 칭찬했다.

“어머니, 스님의 공부가 득도에 이르셨나 봐요. 저와 같은 처녀가 미태를 부려도 고목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고 선 것 같다 하시고, 불 꺼진 재처럼 따스한 기운이 전혀 없었다고 했어요.” 그러나 노파는 오히려 화를 냈다. 그리고는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10년이나 맹추 같은 속물을 공양했구나, 그 같은 사마외도(邪魔外道)를 더 돌보다간 나도 동타지옥(同墮地獄)하겠구나!”하고 외치면서 당장 뛰어 올라가 선객을 내쫓고 암자까지 불태워버렸다.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慧諶)선사가 편찬한 <선문염송(禪門拈頌)>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같은 것인가? 성욕을 제거하는 것은 맞는데, 성욕을 제거했다는 분별심이 남아 있는 것이 문제인가? 이 이야기는 불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고목선(枯木禪)이란 별명으로 통하기도 한다.
 

세상이 다 부처님의 화엄세계다
이 화두로 공부한 스님은 말한다. “내가 40대 중반 때 색심에 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 파자소암 이야기를 듣고 노파가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앞자리에 여학생 세 명이 아무 근심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내리기 전까지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그로부터 삼 일 후 잠을 자다 홀연히 맺힌 의심이 풀렸습니다. 지하철에서 본 여학생들처럼 젊고 예쁜 딸이 나에게 안기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쁠까? 라는 생각을 했고, 노파가 스님에게 화낸 이유가 이해 되었습니다.”

고목선의 스님은 마음이 동할까 봐, 색심을 부정하기 위해 본인 마음을 모두 죽여버린 것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한다. 스님은 머리로는 시방일가 사생일신을 알았지만, 현실에서는 남녀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세상이 다 화엄세계인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파도와 바다는 하나다
‘바다가 한 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파도는 불안하다. 파도는 바다에서 생겨난다. 바다와 파도의 속성이 둘이 아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툭 떨어진 파도는 바다를 잊어버린다. 자신이 어디에서 생겨났고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망각한다. 그래서 파도는 불안하고 겁이 난다. 파도가 자기 안의 바다를 보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파도라는 정체성을 허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파도는 자기 안에 바다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큰 도인과 목석의 차이
“이청춘(李靑春)이 여쭙기를 ‘큰 도인도 애착심(愛着心)이 있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애착심이 있으면 도인은 아니니라.’ 청춘이 여쭙기를 ‘정산(鼎山)도 자녀를 사랑하오니 그것은 애착심이 아니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청춘은 감각 없는 목석을 도인이라 하겠도다. 애착이라 하는 것은 사랑에 끌리어 서로 멀리 떠나지를 못한다든지 갈려 있을때에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자신 수도나 공사(公事)에 지장이 있게 됨을 이름이니 그는 그러한 일이 없나니라.”<대종경> 인도품 21장 법문이다.

육조 혜능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그때 당신의 본래 면목은 어디인가?”라고 했고, 예수는 “하느님께서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다 똑같이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준다(<마태복음> 5장 45절, 48절)”고 했다. 물에 젖은 양이 당신의 마음의 크기라는 말이다.
 

밖으로 향하는 눈을 내면으로 향해야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의 진리는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한다고 했다. 밖으로 향하는 눈을 안으로 내면으로 향해야 일원상의 진리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정수라와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모두 다 내 가슴에 은혜로 화하기를 염원한다.

[2022년 9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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