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 경륜 실현과 성업계승 담겨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총부 순례를 하는 교도들이 가장 많이 발걸음을 올리는 곳은 아마도 소태산 대종사 성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는 곳이 바로 성탑 옆에 자리한 소태산 대종사 성비일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 성비는 무엇인가? 또 어떤 의미인가? 소태산 대종사의 성비에는 소태산이 출현한 의의와 구도과정, 그리고 대각과 구세경륜을 펴나간 생애, 업적이 드러나 있다. 이 성비는 ‘제1대 성업봉찬대회’가 열리던 원기38년(1959) 6월 1일, 소태산 대종사 열반 10주기를 맞아 조성됐다. 제명(題銘)은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竝序)’이다. 

소태산 대종사 성비는 황등산 화강석과 웅천산 오석(烏石)으로 조성됐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기단부에 일원상과 연꽃, 무궁화를 새겼고, 비신은 오석으로 비문을 새겼다. 비갓에는 연꽃과 원월보주(圓月寶珠)를 올렸으며, 총 높이가 5m84㎝에 이르는 큰 형태이다. 

비문은 제(題)14자, 서(序)1818자, 명(銘)112자, 기(記)13자로 총 1957자이다. 송성용(剛庵 宋成鏞, 1913~1999)서백이 썼다. 원기20년(1935) 중앙총부에 대각전을 세웠을 때 전액(殿額) 등을 쓴 부친 송기면(裕齋 宋基冕, 1882~1956) 서백과의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또한 비문은 ‘명’을 읊기 위해 ‘서’를 적는 형식이다. 성비명의 ‘서’는 시대 상황에 맞춰 국문과 한문을 혼용해 기록했다. 웅대한 명문이라 그 구절이 저절로 외워질 정도다. 한문 운율을 맞춘 ‘명’은 읽기가 쉽지 않기에  『원불교대사전』에 번역본이 실려 있다. 

비명에서는 ‘소태산 대종사는 새 시대의 주세불(主世佛)이며, 이 회상은 정법(正法)의 주세 회상이다’를 선언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점이자, 소태산 대종사 성비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기(圓記)라는 연호가 처음 쓰인 것도 이 비명이 처음이다. 처음 비명 저술 당시 문장가였던 유허일 대봉도가 저술했으나, 교단의 공의를 얻지 못하면서 이른바 비문 파동이 일어났다. 그에 따라 정산종사가 직접 찬술하게 됐다. 비명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글귀에 소태산 대종사의 경륜을 어떻게 실현하고, 성업을 어떻게 계승해 나갈 것인가가 잘 드러나 있다. 

가끔씩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있을 때 성탑을 찾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성비의 비문을 천천히 읽어보면, ‘우리 회상이 어떤 회상이며 우리 스승이 어떤 스승인가’ 하는 감상이 들며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한다. 비명은 소태산 대종사에 대한 정산종사의 신성이 느껴지며, 또한 교단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정산종사가 회갑날 모친 이운외 대희사를 모시고 성탑참배 후 성비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정산종사가 회갑날 모친 이운외 대희사를 모시고 성탑참배 후 성비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2022년 4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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