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국제노동절에 직장별로 체육경기와 오락회를 진행하고, 각종 예술공연과 ‘경축야회’를 관람하며, 가족단위로 명소를 찾아 식사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북한에서는 국제노동절에 직장별로 체육경기와 오락회를 진행하고, 각종 예술공연과 ‘경축야회’를 관람하며, 가족단위로 명소를 찾아 식사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망치와 낫, 붓은 조선노동당의 상징이다. 각각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을 의미한다. 북한에서는 이들을 근로자라고 부른다. 근로자와 분리해 노동계급을 특별히 “나라의 맏아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5월 1일은 국제노동절(May Day)이다.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제 실시를 주장하는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기념해 세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목적으로 국제노동자협회(제2인터내셔널)가 제정했다. 1890년 5월 1일, 세계 각국에서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집회가 열렸고, 그것이 세계 노동절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에 조선노동총연맹 주최로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를 외치며 최초의 노동절 기념행사를 열렸다. 1946년 5월 1일에는 서울에서는 해방 후 첫 노동절을 맞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주도로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1946년 5월 1일, 해방 후 처음 평양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 모습.
 1946년 5월 1일, 해방 후 처음 평양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 모습.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 명절’로 기념
평양에서도 이날 ‘5.1절 기념 평양시군중대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던 김일성을 비롯한 소련의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대회를 마친 후 노동자, 농민, 학생, 여성 등 각계각층의 시위대가 마르크스·스탈린·김일성 등의 대형초상화를 앞세우고 평양거리를 행진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북한은 첫 노동절행사부터 이날을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기념한 것이다. 북한은 1950년부터는 노동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했고, 매년 주요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첫 행사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노동절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전에는 최고지도자를 찬양하고 노동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공식 행사를 진행하며, 오후에는 직장단위로 체육경기나 오락회가 열리고 가족단위로 주요 명소들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예술공연이 열리고, 밤에는 ‘경축야회’가 열리거나 불꽃놀이가 진행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노동절 풍경이 가족단위로 외식을 하거나 유원지를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행사’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평양 모란봉, 대동강, 보통강, 능라도, 대성산유원지, 개선공원 등은 음식을 싸온 근로자들로 북적거리며 지방 각지의 유명 명소들도 ‘들놀이(소풍)’ 나온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 국제노동절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중앙보고대회는 생략하고,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등 당·정·군의 주요 간부들이 평양시 1만 세대 살림집(주택) 건설장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에 나가 공장, 기업소, 농장의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 지식인들을 찾아 격려했다.

이와 함께 평양과 각지의 극장, 야외무대들에서는 다채로운 예술공연이 펼쳐졌으며 직장별, 작업반별, 분조별로 체육 및 유희오락 경기들이 벌어졌다.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사명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방 초기 북한의 공장들에는 “생산은 건국의 토대”, “기술은 노력자의 무기다!”라는 구호가 나붙었다. 당시 김일성 위원장은 “우리는 없는 것은 새로 창조하고 부족한 것을 부족한대로 모든 곤란과 장애를 이를 악물고 뚫고나가야 살 수 있고 새로운 부강한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의 핵심 화두가 ‘단결된 애국심’과 ‘부강한 나라 건설’에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노동절을 맞아 평양의 시민들이 모란봉유원지에 나와 가족단위로 식사하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평양의 시민들이 모란봉유원지에 나와 가족단위로 식사하고 있다.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과 ‘15년 경제구상’에 근로자 분발 촉구
7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북한은 근로자들을 “사회주의 조국과 운명을 끝까지 함께 해나가는 견결한 수호자, 애국의 열정과 비상한 창조정신으로 강성국가건설의 진격로를 힘차게 열어나가는 돌격투사들”이라고 규정한다. 

최근에는 과거 어려웠던 시기를 상기하며 근로자들이 당시와 같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모든 근로자들이 “전후 복구건설 시기와 천리마 시대의 영웅들처럼 오직 당만을 믿고 따르며 당의 구상과 결심을 결사의 헌신으로 받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촉구는 현재의 북한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과 계획 목표 달성이 녹녹치 않은 상황임을 반영한다.

그나마 근로자들의 식량사정은 많이 호전됐다. 2016~2019년 사이 탈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0.7%가 하루 세 끼 식사를 했다고 응답했다. 식사 횟수가 늘어난 것 뿐 아니라 식사의 질도 좋아져 아직도 잡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긴 하지만, 쌀로 지은 밥을 하루 세 끼 먹는 북한 주민들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북한은 최근 대대적으로 온실채소농장을 각 지역에 건설하고, 평양에 5만 세대를 비롯해 각 지방 도시에 대대적 주택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주식문제 해결에서 채소와 과일 증산, 주거생활 개선으로 정책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8차대회에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경제구상이 주목된다. 

그는 “우리 당은 앞으로의 5년을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오는 효과적인 5년, 세월을 앞당겨 강산을 또 한 번 크게 변모시키는 대변혁의 5년으로 되게 하려고 작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거창한 투쟁을 련속적으로 전개하여 앞으로 15년 안팎에 전체 인민이 행복을 누리는 륭성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일떠세우자고 합니다”라고 향후 15년의 경제목표를 제시했다. 

근로자들의 측면에서 ‘융성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이란 지방 주민들의 생활을 유럽의 중소도시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구상과 목표를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반적으로 낙후된 지방경제, 투자재원과 원자재 부족, 장기화된 한반도 비핵화 해결과 대북경제제재 등 난제가 산적해 있고, 무엇보다도 북한이 이야기하는 ‘단번 도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기반시설 건설과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북한이 지금은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평화적 환경 조성과 대외개방을 통해 국제·남북 경제협력에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 올해처럼 긴장된 국면에서 노동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번영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가족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근로자의 날이 될 수 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2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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