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이 사람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에게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무량천만 부처님들이 계신 곳에 이미 뭇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이 글귀를 듣고 한 생각에 청정한 신심을 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當知 是人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所 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一念生淨信者).

『금강경』 6장의 내용이다. 말세에 『금강경』 법문을 듣고 참되다는 생각, 진실한 믿음을 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이미 무량수의 부처님 계신 곳에 많은 선근을 심었기에 법문을 듣고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낸다.

육조 혜능대사의 일화가 생각난다. 가난한 나무꾼이었던 혜능은 나무를 팔고 나오다가 우연히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혜능은 한번 듣고 문득 마음이 밝아져 출가를 결심하고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간다. 『육조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보면, 혜능대사야 말로 수많은 생을 통해 무량한 부처님께 불공을 올린 선근종자였던 것 같다. 

부처님 한 분을 만나게 되는 것도 너무나 귀한 인연이다. 삼천년 불교 역사 속에 깨달음을 얻은 큰 스승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하다. 그런데 어떻게 무량 수의 부처님을 만나고, 그 분들을 알아보고, 한분 한분 빠짐없이 불공하여 선근을 심을 수 있을까? 너무 까마득한 일이다.

하지만, 원불교 교도라면 무량수의 부처님을 만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무량수의 부처님을 만나고 있다. 그러니 이 모든 부처님들께 불공을 올리자”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 그것이다. 곳곳이 부처님이요 일마다 불공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은혜로 우리가 상식처럼 입에 올리는 이 말은 깊은 깨달음이 담긴 불법의 진수다. 처처불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량수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는 곧 법신불이니 나의 모든 마음, 말, 행동 하나하나에 경외심을 품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나의 모든 육근 동작이 불공으로 승화한다. 결국 인연이 성숙하면, 부처님의 법문 한 구절을 듣고 문득 마음이 밝아져 청정한 믿음을 낼 수 있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부처님을 봉안한 위치를 묻는 시찰단 일행에게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 집 부처님은 밖에 나가 있으니 보려거든 잠깐 기다리라” 하고, 조금 후 산업부원들이 돌아오니 그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다 우리 집 부처니라”고 한다(『대종경』 성리품 29장). 시찰단 일행으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수수께끼 같은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다면, 단지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행해야 한다. 경외심을 가지고 만나는 모든 부처님께 불공을 올리자.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5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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