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아시아 사회에서 부모교육에 대한 인식은 자녀교육보다 그 비중이 낮다. 아마도 유가의 가부장적 문화, 수직 문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예컨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자녀교육의 대표적인 텍스트를 꼽는다면 단연 남송의 유학자인 주자(朱熹, 1130~1200)가 편한 『소학(小學)』이나, 이이(栗谷, 1536~1584)가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들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태교도 부모교육이라고 한다면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 1739~1820)가 쓴 『태교신기(胎敎新記)』가 있다. 『태교신기』는 남성 역시 태교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주로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렇듯 유교문화권에서 자녀교육은 부모의 책임 범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부모 자신에 대해서는 그만큼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불교의 『정전』에서는 부모의 책무를 들고 있다. 수신·제가의 요법에서는 (비록 호주라고 했지만) 견문·학업과 자녀의 교육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부모교육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가르침은 부모은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부모은은 자녀가 부모에 대한 은혜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부모 자신에 대한 교육이기도 하다. 

부모은을 단순히 자녀가 부모에 대한 지은, 보은하는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무, 부모교육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부모은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쌍무적인 은혜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삼세 인과로 보더라도 모두가 부모이자 자녀일뿐더러 자녀의 존재 뒤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열반한 뒤에 남의 부모도 내 부모 대하듯 하라’는 가르침은 모두가 세세생생에 부모이자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세 말 유럽에서 부모교육을 다룬 바뇨니(A Vagnoni, 1566~1640, 중국명 高一志)의 저서인 『동유교육(童幼敎育)』은 좀 이채롭다. 그는 첫머리부터 자녀교육에 앞서 가장 중시돼야 할 것이 바로 부모교육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자동차 운전을 하려면 반드시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의 인격체인 자녀의 부모가 되는 데 있어 자격을 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민법에서 남녀 간 결혼 적령기를 설정하고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법적 조문이지 이를 두고 부모교육이라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바뇨니는 자녀교육을 잘하려면 부모로서 첫 번째 단계로 결혼을 신중히 할 것을 말한다. 결혼은 부모가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에 결혼하려면 적절한 때와 선택, 바른 교제를 할 것을 제시한다. 결혼에 적절한 때란 결혼의 최적기를 말하는 것이고 선택이란 서로 심신 간의 건강, 지혜로운 배우자인가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이런 결혼이 적어도 자녀교육의 선결 요건임을 강조한 것이다. 

요즘은 결혼도 어렵지만, 이혼율도 매우 높다. 물론 누구나 선택의 자유는 있다. 결혼이나 이혼은 선택이지만 자녀가 출생하면 그에 대한 책무는 선택을 넘어선 의무다. 자녀교육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자녀교육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부모가 바르게 서야 한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시대의 부모와 예비부모는 ‘나는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가?’, 부모가 되었다면 ‘부모로서 책무를 다하는가?’를 자문하자. 그것이 자녀교육의 출발점이다.

/원광대학교

[202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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