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불교 3,  아띠샤 (2)
왜 많은 사람들이 광신자 되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광신자가 됨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도피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깊이 생각하고 느끼지 않아도, 예수에 기대고 부처나 보살들의 어깨에 기대면 편하다. 

히말라야를 올라갈 때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강과 아름다운 계곡과 숲이 있는 길도 있고, 수목이 없는 길도 있고, 바위로만 된 길도 있다. 아니면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길도 있다. 그러나 모두 정상으로 가기는 한다. 정상에 오른 선각자들은 여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이 길만이 바른 길이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띠샤도 자기 나름대로 정상에 올랐지만, 그는 정상에 오르는 세 가지의 길을 다 안다. 그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여유롭다. 예수는 혈기방장한 젊은이라 그랬는지, 자기의 가르침이 옳고 직선적이고 바른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아띠샤의 길은 넓기는 하지만 지그재그의 길이다. 그는 많은 길을 조화롭게 제시해 준 부처님이다. 그의 저서로는 후계자인 드롬톤(Dromtön, 1004~1064)이 창시한 카담파 종(宗)의 근본경전이 된 『보리도등론』과 『수심요결』이라고 불리는 명상요결이 있다. 『보리도등론』에서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는 불교 수행인이 추구하는 목표이고, 도(道, Pata)는 그것을 위한 수행의 과정을 말한다. 등(燈, Pradipa)은 밝힌다는 의미의 횃불을 의미한다.

그는 번쇄한 후기 불교의 수행법들을 밀교를 중심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불교 수행으로 일목요연하게 구분하여 주었다. 그는 하사(下士), 중사(中士), 상사(上士) 등 근기에 따른 구분과, 소승과 대승 또 밀교승의 순서에 따른 삼사차제(三士次第)로 수행의 방법을 정리하고, 수행자의 근기에 따른 심리적 변화에 의한 구체적인 수행 단계를 성문승, 바라밀승, 만뜨라승의 삼승도차제(三乘道次第)로 설명했다. 아띠샤의 명상 요결의 첫 번째는 마음을 전환시키는 네 가지 생각이다. 두 번째 요결은 절대적인 보리심과 상대적인 보리심을 개발하는 것, 세 번째 요결은 역경을 영적인 각성을 위한 도움으로 변형시키는 것, 네 번째 요결은 한 생을 위한 수행의 종합, 다섯 번째 요결은 마음 수련에 있어서 숙달의 기준, 여섯 번째 요결은 마음 수련에서 서약할 것들, 일곱 번째 요결은 마음 수련법의 교훈들이다.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
천태지의는 천태 삼대부로 일컬어지는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이 있다. 지의가 강설하고 그의 제자 관정이 받아 적은 것인데,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종파인 천태종을 탄생시켰다. 천태종이라는 종파의 명칭은 지의가 오래 머물렀던 오늘날의 절강성 천태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고타마 붓다의 법문을 설한 시기를 따라 다섯 단계로, 곧 설교 방식과 내용에 따라 각기 네 가지 형식으로 구분하였다. 이른바 ‘5시 8교’라는 카테고리다. 붓다의 설법을 다섯 시기로 나누고, 중생을 가르치는 형식과 교리의 깊이를 각각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다섯 시기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한 내용에 의한 구분이다. 지금 우리가 보면 별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인도에 대한 정보가 없던 시대에 그런 통찰력으로 가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단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구분은 『법화경』이 붓다의 가르침의 본질이었음을 주장하려는 의도에서 시스템화 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이 붓다가 되기 위한 ‘교육학적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알고 있는 천태종은 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로 신앙과 수행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천태지의의 천태종은 넘어다 볼 수 없는 웅장한 무엇인가가 있다.
천태지의는 꽤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양나라와 진나라가 차례로 망하고 수나라가 통일제국을 세우던 피로 얼룩진 난세였다. 4만의 사원이 헐리고 300만 명의 승려를 환속시킨 유명한 북주의 폐불 사건도 있었다. 그런 사방이 캄캄한 시대, 그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런 절망 속에서 영원을 응시하였다. 그가 본 세계는 처처불상의 세계 사사무애의 법계, 절대긍정의 세계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연옥이요, 아비규환의 지옥인 아수라장의 현장이었다. 초인이 아니었다면 그런 세계의 뒷면을 보고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을까?

천태지의의 전기에 의하면, 형주의 총관이었던 왕적(王績)이 그를 만나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땀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왕적이 집밖으로 나와 흐르는 땀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 몸소 백전을 겪어 싸우면 싸울수록 용기가 나 한 번도 무서워해 본 적이 없었으나 오늘 그를 보자 부끄러운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진왕 광(廣, 뒷날 수양제)도 그를 지자대사라 존칭하며 그의 수제자가 됐던 것이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2년 6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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