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불교 2
불교 초기교단의 한 사람이었던 목갈라나(목련존자)가 붓다의 시자였던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입멸 전에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정해 입멸 후의 의지처, 곧 우리 교단의 상수로 정하지는 않았는가?” 아난이 대답했다. “단 한사람의 수행자도, 세존은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떠난 후에 너희들이 의지할 곳이다’라고 추천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들이 오늘 귀의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목갈라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렇게 의지처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인가?” 아난은 “그렇다고 우리들에게 의지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에겐 의지처가 있습니다. 바로 법(Dharma)을 의지처로 삼으라 하셨습니다.”(『맛지마 니까야』.No.108)라고 답했다.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는 시스템 메이커로서의 고타마 붓다의 출발이다.

남방불교로 전수된 사제(四諦)와 12인연, 무상과 무아를 관하는 삼수관(三隨觀), 신·수·심·법을 관하는 사념처관(四念處觀) 등은 초기불교의 교리 시스템이다. 북방불교(대승불교)로는 교종(敎宗)에서 천태의 일심삼관(一心三觀)과 법상의 삼계유심관(三界唯心觀), 삼론종(三論宗)의 팔불중도관(八不中道觀) 등이 교리적 시스템이다. 요가학파의 근본 경전인 『요가 수뜨라』의 네 장은 저마다 다양한 수련의 질과 측면을 다루고 있다. 각 수행자가 얼마나 발달된 지성과 정련된 의식을 가졌느냐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내용이 달라진다. 특히 2장 ‘사다나 빠다’(Sadana:수련, Pada:部·조각)에서는 행위력 및 지각력으로 시작되는 수련의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2장을 통해 수행자는 영혼의 눈에 보이는 층인 몸과 감각을 정련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는데, 거친 층에서 점차 미묘한 층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수행자의 8가지는, 윤리적 명령(야마), 고정된 준칙(니야마), 자세(아사나), 호흡조절(쁘라나야마), 감각을 안으로 돌려 내면을 향하게 하는 것(쁘라띠아하라), 의념(疑念 또는 집중, 다라나:dhārana), 명상(冥想 또는 靜慮, 드야나:dhyanā), 삼매(三昧, 사마디:samādhi, 자아 속으로 의식을 흡입시키는 것) 등이다.

『요가 수뜨라』의 제2장은 영적 발전을 이룬 사람이나 아직 발심하지 못한 수행자 모두를 위해 길을 밝혀준다. 요가를 전혀 모르는 완전 초보자도 제2장 ‘사다나 빠다’의 내용을 통해 어떻게 수행을 하면 높은 수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가 있다. 완전 인간의식의 상승을 위한 네비게이터(navigator)다. 『요가 수뜨라』는 빠딴잘리가 기초한 수행법을 4~5세기경에 후학들이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경은 이미 정착된 초기불교의 수행체계(시스템)를 상당히 참고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라즈니쉬의 말대로 『요가 수뜨라』는 ‘수행서가 아니라 일종의 과학책이다’라고 하는 말에 수긍이 갈 정도로 시스템화 되어 있다. 각종 각파로 나뉜 불교 중에서 불교를 새롭게 시스템화한 사람은 많다. 그 중에서도 인도불교 말기에 불교를 티베트로 퍼 나른 아띠샤(Atisha, 982~1054)와 중국의 천태지자대사(智者大師)로 존경받는 지의(智顗, 538~597)가 뛰어났다.
 

법(Dharma)을 의지처로 삼으라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고타마 붓다의 출발이다.

아띠샤(Atisha)
아띠샤는 현재 인도 동부인 벵갈 지방에 있던 사호르 왕국의 왕자 출신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인도 불교 연구 중심지인 날란다 대학에서 수학하고 1040년(58세)에 인도에서 티베트로 건너갔고, 1054년(72세)에 열반하였다. 참고로, 날란다 학교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승도가 있었다. 매일 백여 곳에서 강좌가 열렸다. 현장법사의 인도 순방의 첫째 목적은 무착(無着, Asaňga)의 『십칠지론』(『유가사지론』의 다른 이름)을 구하여 불교 내부의 다른 학설과 해설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주된 목적지는 당시 유식학의 종장이었던 계현(戒賢)이 주석하고 있던 마가다국의 날란다였다. 현장보다 50년 뒤에 인도를 여행한 의정도 날란다 학교에는 승도 3천명에 3백의 승방을 갖춘 대규모 승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띠샤는 인도 최후의 불교를 티베트에 전달한 대표적 학승으로 불교의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를 통달했고, 상좌부 불교, 대승불교, 금강승불교의 3단계를 순서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띠샤는 인도불교 후기에 성행했던 밀교를 중심으로 소승과 대승의 교학을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초기불교 이후의 번잡하기 짝이 없는 여러 가지 이론과 수행의 방법들을 정리해서 티베트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띠샤는 자기의 가르침을 꼭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의 비전과 자기가 도달한 방법을 이야기할 뿐이다. 시스템 메이커는 어떻게 보면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원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런 면이 없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2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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