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주 교무
박여주 교무

[원불교신문=박여주 교무] 2년 전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여자 교무는 결혼할 수 없다고 하니 “천주교처럼 남녀 둘 다 결혼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여자만 허용을 안 하냐. 종교가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것 같다. 사실 종교가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친구에게 “종교를 구성하는 비율이 노령인구가 많아서 보수적이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왜 나이가 들면 보수적일까? 젊을 때는 뇌가 말랑말랑하다.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생각했던 대로 생각하는 것이 더욱 굳어진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배운 관념이나 생각들이 옳다고 믿는다. 분별이 주착이 된다. 사실 종교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분별심은 인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허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고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공부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타력을 병행하는 공부를 한다. 타력에는 스승과 도반, 교화단, 정기훈련, 기도가 있다. 자력이 없을 때는 타력이 받쳐주어야 비로소 자력이 커진다. 인연복이 있어서 좋은 스승과 도반의 타력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으로 얻을 수 있는 타력이 바로 교화단이다.

 

각 교당·기관 사업 줄여서라도
교화단이 우선 되어야
미래세대 교화 위해서는
의식교화 비중 점차 줄이고
훈련을 통한 교화방식으로

출가교화단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 
​교화단에서는 사실 단장·중앙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재가교역자 단장·중앙 훈련은 들어봤어도 출가교역자 단장·중앙훈련은 들어본 적이 없다. 창립 당시 1년에 6개월을 하던 정기훈련도 지금은 1년에 7일만 하는 마당에, 교화단을 통한 타력마저 미약하다. 

안암교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할 때 청년들이 왜 공부가 잘되는가를 생각해봤다. 그 중 하나가 교화단이다. 우선, 교화단회를 매주 한다. 교당에 처음 가더라도 단에서 연대와 소통이 끈끈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매월 1회 단장·중앙훈련을 통해 경전공부와 문답감정, 일기발표를 하며 단장·중앙의 역량을 강화한다. 상시일기와 정기일기 점검·발표도 한다. 상시일기를 써오면 단장님에게 ‘참 잘했어요’ 칭찬 도장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친목을 위한 단모임과 단 엠티는 별도다. 그만큼 교무와 단장·중앙, 단원들이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한다. 나도 사실 교무님보다 교화단에 먼저 마음이 건네졌고 그만큼 단원들 간에 애정이 돈독했다.

그에 비해 현 교단의 모습을 보면 사업에 치우쳐 있어 보인다. 교무들이 바빠서, 힘들어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단회조차 빠지거나 쉬고 싶어한다. 단장·중앙과 단원들 간에 얼마나 유대가 깊은가 생각해보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동이 잦고, 단장·중앙이 자주 바뀌다보니 단장·중앙과 단원들간의 연대가 깊어지기 어려운 탓이 아닐까도 싶다. 또한 단장·중앙의 최우선순위는 단원들이 되어야 하지만 소속교당 교도님들을 챙기느라 더 바쁜 현실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심신이 지친 단원들은 어디서 타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병든 사회를 치료할 때는 지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이단치교이기에 그만큼 단장·중앙의 역할이 크다. 따라서 현 출가교역자 단장·중앙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단장·중앙들이 얼마나 단원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단원들의 공부정도를 살피고 있는지, 문답감정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견제출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분위기인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각 교당·기관의 사업을 줄여서라도 교화단이 우선 되어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 당대의 ‘매월단원일기성적조사표’ 기재조차 사라진 지금은 100년 전보다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질적으로는 강급한 것 같아 보인다.
 

의식교화는 줄이고 훈련을 통한 교화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불법연구회로 종교를 혁신하고 사회를 혁신하고자 하셨다. 107년 전 가장 혁신적인 생각으로 이 회상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교단을 혁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혁신하려는 사람들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미신적 신앙을 하지 않는다. 형식적 불공도 하지 않는다. 점점 종교의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에 따라 종교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4기념례로 허례의식을 폐지하자고 하셨건만 기념제와 명절제사는 그대로 다하고 육일대재 명절대재 행사가 추가되어 진행되고 있다. 대재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명절합동향례 역시 별도다. 거기다 초상이라도 나면 3일간은 아무것도 못한다. 어쩌다 의식이 이리도 많아진 걸까.  

앞으로 미래세대를 교화하고 싶다면 의식교화의 비중을 줄이고 명상센터나 인성교육기관을 통해 다가가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유명한 명상센터가 있는가를 보면 찾기 어렵다. 그나마 청소년국에서 심심풀이 프로그램이나 새삶회에서 원학습코칭을 개발하여 여러 교육기관에 나가고 있는 것에서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청소년 담당 교무들이 현재 의식교화와 행정회계, 일반교화 보조하느라 엄두를 못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미래세대 교화를 위해서는 의식교화의 비중을 점차 줄이고 훈련을 통한 교화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 좀 더 시대화·생활화·대중화에 맞지 않을까? 
 

소통이 활발한 집단이 성공한다
어느 집단이나 가장 성공하는 집단의 특징은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가의 여부다. 소통이 잘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상대의 의견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 점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겠네’ 하는 수용적 태도다.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한 열의다.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났지만 자만했던 항우와 실력은 부족했지만 부하들의 말에 귀기울였던 유방이 싸웠을 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누군가 의견을 말할 때 ‘안돼, 현실적으로 어려워’ 하는 차단성 발언보다는, 그 의견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분석해보고 또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방법을 같이 생각해보자고 힘을 북돋아준다면 좀 더 재밌게 열의를 갖고 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락교당

[2022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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