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교장 / 한겨레중고등학교
이진희 교장 / 한겨레중고등학교

[원불교신문=이진희 교장] 광신자를 뜻하는 팬(Fan), 그 팬으로 이루어진 팬덤(Fandom)이 우리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팬덤은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리 또는 그 현상으로, TV·인터넷 등의 매체 발달로 대중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이런 팬덤의 덕을 톡톡히 본 공인들이 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을 십분 발휘, TV 토론에서의 인기몰이를 통해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1980년대 조용필은 ‘오빠 부대’를 이끌며 가요계를 주도했었다.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한 서태지 역시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었다. BTS의 성공에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팬클럽 아미(Army)가 있다. 단지 연예인 뿐만아니라 스포츠 스타나 유명 정치인 등, 이제는 그 영역이 확대되어 다양한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  

과거의 팬덤은 주로 모임을 통해 형성되었지만, 새롭게 등장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는 팬덤을 강화하고 확산시킨다. 추종자들은 이를 통해 추종 대상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행동 지침을 공유하면서 결속력을 강화한다. 또한 그들은 그것이 음악 차트의 1위든, 경기에서의 우승이든, 선거에서의 당선이든, 추종 대상의 위대한 행적과 서사에 함께 참여했다는 공통의 정체성을 향유하면서 삶의 희열을 느끼며 팬덤을 확대, 재생산해 나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팬덤이 
민주적 결집으로 빛을 발할지
집단 최면 나락으로 떨어질지 
성숙한 시민 의식과 진정한 
리더의 역할에 달려있다. 

그런데 이러한 팬덤은 긍정적 기능만큼, 부정적 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양방향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상업적, 정치적 목적으로 비대해진 팬덤이 선정주의와 포퓰리즘의 악순환으로 극단과 대결의 양상을 띠면서 파쇼화되고 있다. 추종자들은 집단적 감성에 매몰되고 스스로의 폐쇄논리에 빠져 강경 노선으로 일관한다. 추종 대상을 향한 무분별한 과잉 집착은 공동의 적을 만들고 그들에 대한 사이버 테러나 집단 충돌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제공한다. 또한 추종 대상을 절대시하고 진리마저 독점하는 편가르기를 통해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잣대로 공격적인 팬덤 문화에 기대어 언어폭력과 집단 도발을 서슴치 않는다. 

추종 대상 역시 추종자들의 인기에 편승, 그 달콤함에 빠져 독선과 아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팬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러니 추종자나 그 추종 대상이나 모두 합리적 비판과 이성적 반론에도 귀 닫고 눈 감으며 때로는 재갈을 물리기까지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민주 사회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화해와 타협, 협상과 공존은 없다. 상대를 향해 더 큰소리로 내지르는 거센 발언만이 팬덤의 진심으로 통하고 촌철살인으로 인정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팬덤 문화가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팬덤이 민주적 결집으로 빛을 발할지 아니면 집단 최면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는 성숙한 시민 의식과 진정한 리더의 역할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특정인에 대한 극렬 지지가 때로는 그릇된 형태로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추종 대상의 무오류성을 과신하고 그를 신격화하게 되면 팬덤은 단지 상대에 대한 반목과 대립을 일삼는 극단적 진영 논리의 베이스 캠프가 될 뿐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제 팬덤의 중심에 있는 추종 대상들은 스스로를 둘러싼 광기 어린 팬덤에 취해 휘청거리지말고, 반대파나 상대방을 향한 무차별적 언어폭력과 무법한 행태를 일삼는 팬덤과 결별하고 정치꾼 아닌 진정한 리더의 자질을 갖춘 모습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중고등학교

[2022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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