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교장
이진희 교장

[원불교신문=이진희 교장]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그리고 우영우, 저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올 6월부터 방영한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우영우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채널인 ENA가 사상 초유의 시청률을 달성했고, 주요 출연진이 연예인 호감지수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우영우 신드롬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자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아로 태어났다. 한번 본 것은 모두 깡그리 외워버리는 뛰어난 암기력을 발휘하여,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만점 가까이 받는다. 하지만, 빌딩 회전문 하나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어리숙함을 보인다. 또한 그녀는 고래와 법, 우영우라는 자신의 이름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타인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사회성과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다.

이 드라마는 이런 자폐인 우영우가 대형 로펌에 들어가 좌충우돌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 주위의 주변인들 역시 그녀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해 나아간다. 변호사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그녀만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문제 해결력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고, 명문대 골든 코스를 달려온 주위 변호사들의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자폐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응원
계속 이어지기를

드라마 속 우영우는 확실히 특별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암기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딸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딸바보 아버지가 있고, 어릴 때부터 영우가 어려움에 닥치면 만사 제치고 달려와 도와주는 절친도 있다. 또한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냉혹한 로펌의 세계에서 그녀의 편을 자청하는 햇살 같은 동료 변호사도 있고, 반복적인 고래 이야기에도 귀찮은 내색 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한결같이 그녀만을 바라보는 사랑하는 남자도 있다.  

그러기에 그녀는 드라마 밖의 또 다른 우영우들과는 다르게 어쩌면 타고난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우영우들은 훨씬 더 어려운 여건에서, 선천적인 자폐 성향에 좌절하고, 때로는 가족의 외면으로 상처받고, 차가운 사회적 편견을 감내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TV에서나 볼 수 있는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의 멋진 활약상을 마냥 즐겁고 기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문득 드라마를 보다가 20여 년 전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쉬는 시간마다 내게 와서 서울 지하철 노선도, 경부선, 호남선을 자랑스럽게 외워대던 학생이었다. 누가 딱히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신나게 암송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하는 모습에 그만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들어주다 보니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매일 교무실 내 자리를 다녀갔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학생이 자폐아라는 것을. 당시 그 학생은 별일 아닌 일에 갑자기 화를 내고 성질을 못 참는 모습을 보이는 등 분노 조절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인지 친구 하나 없어 3년 내내 늘 혼자 다녔던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이제 드라마의 종영으로 박은빈이 연기했던 멋진 우영우의 판타지는 점차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또 다른 우영우들은 이리저리 밀쳐지면서 여전히 험난하게 세상을 살아갈지 모른다. 드라마의 흥행에 따라 열풍처럼 일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호기심보다, 자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응원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

/한겨레중고등학교

[2022년 8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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