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김도현 교무

[원불교신문=김도현 교무]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 가운데 사구게 등을 받아 가져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준다면, 그 복덕은 앞의 칠보 보시보다 더 클 것이다(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勝彼)”(<금강경>, 8장 중)

부처님의 지혜는 보통 사람의 견해로는 상상할 수도 없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범부들은 오히려 여우같은 의심을 내기도 한다. 사구게를 전하는 법보시 공덕에 대한 말씀도 그러하다. 보통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말씀이다. ‘사구게를 전하는 것’ 또는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구마라집은 “위타인설(爲他人說)”이라고 간략히 표현하였다. 이에 비해 현장은 “수지 독송 구경통리 급광위타선설개시 여리작의”라고 하였다. <금강경>의 원형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현장의 번역을 통해서 부처님의 본의를 짐작해보자.

수지(受持)는 가르침을 이해하여 받아들이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는 공부의 기본이 된다. 독송(讀誦)은 이해하고 기억한 것을 끊임없이 읽고 외우면서 그 내용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상(相)이다. 하지만 지혜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상이다. 법문을 독송하면서 산냐(saṁjñā)를 반야(prajñā)로 전환시킬 수 있다. 

구경통리(究竟通利)는 ‘궁극적인 경지에까지 예리하게 통달한다’는 뜻이다. 구경통리는 별도의 과정이 아니라, 수지독송을 통해 이르러야 할 경지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부단한 독송은 그 이해의 수준을 깊게 한다. 그리해서 생각의 전환과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

급광위타선설개시(及廣爲他宣說開示)는 ‘더불어 널리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베풀어 전하여 그 뜻을 열어 보인다’는 말이다. 구마라집의 ‘위타인설’이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에 해당하는 듯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전하는 이는 수지독송 구경통리를 해야 한다.

또,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어 보이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 그렇다고 확인하는 것 같이 전하여 주는 것이다. 이 광위타선설개시의 목적지는 여리작의(如理作意)이다. ‘이치에 맞도록 마음을 내게 함’이라는 뜻이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깨달으신 이치에 부합되는 마음을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구게를 전하는 것의 어려움과 무량한 공덕이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알아야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르침은 새로운 배움의 단계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나의 앎도 깊어진다. 서로에게 사구게를 전하면서 함께 진급하는 것이 부처님의 본의일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2년 8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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