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수] 원불교 교법의 시대화라는 화두는 교단의 미래나 원불교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인류와 생명, 모든 환경을 위해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인류와 생명과 환경의 미래를 위해서 원불교를 열고, 일반적으로 종교가 잘 언급하지 않는 구체적이고 담대한 설계 ‘개교의 동기’를 교전 첫머리에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불교 교법의 시대화는 개교의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개교의 동기의 핵심은 ‘물질의 사용과 정신의 확장, 이를 통해 일체 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요약해 본다.〈대종경〉교의품 30장에서도 용심법으로 모든 것을 ‘선용’하고 그를 통해 교화하라는 부연이 있다. 나아가 백지혈인의 시작점에서, 9인 제자와 함께 기도를 올리는 명확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종경> 서품 13장)
 

원불교는 시대를 바라보고 물질문명을 사용, 선용하여 결국 낙원으로 가는 길을 여는 종교다. 원불교의 교화가 어렵다면 우리가 시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물질에 끌리거나, 물질문명을 제대로 사용하고 선용하지 못하고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이 교조정신을 이 시대에 맞게 최적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메타버스가 이슈가 되었고, 인간증강(IA)이나, 인공지능(AI) 시대가 오고 있고, 이미 눈에 보이지 않지만 AI가 전기처럼 우리 주변에 흐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중요한 것은 원불교적 관점에서 우리가 AI나 IA를 잘 이해하고 여기에 끌리지 않으면서 잘 사용하고 선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AI 등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대체로 지나친 기대 또는 지나친 두려움이라는 양 극단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AI가 산업적 영역에서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을 때 종교는, 특히 원불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메타버스나 AI-IA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물질문명의 선용이 아닐까.

/한국예술종합학교

[2022년 8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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